산업 기업

[기술탈취 없어야 벤처강국 된다]"대기업 진입장벽 낮추되, 디자인 모방 등 관행 뜯어고쳐야"

<3>창업생태계 활성화 막는 M&A 규제

벤처 인수 따른 불이익 많고

지주사 지분규제 등도 걸림돌

대기업들 선뜻 M&A 못나서

창업투자사 소유 등 허용하고

기술탈취 방지책 마련도 필요

“지주회사 만들면 뭐합니까. 경영전략 세워서 인수합병(M&A) 해야 하고 그 주체가 지주회사인데 규제 탓에 M&A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워요. 막상 무리해서 M&A 하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꼬리표가 바로 붙는 것도 부담이죠.(대기업 M&A 담당자)”

선순환하는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 대기업들도 이견이 없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을 활발히 사들여 새로운 성장동력과 DNA를 확보하는 M&A 주체가 돼야 할 대기업들은 각종 규제가 M&A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만 있는 지주회사 규제 △벤처기업 인수 후 따르게 되는 제도적 불이익 △M&A를 유도하는 정책적 인센티브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M&A에 나서야 하는 동기부여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길표 백석대 경상대학 교수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정적 결과가 지금의 M&A 규제로 이어졌다”며 “중요한 것은 기술탈취 방지,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규제개선을 하되 다양한 장치를 통해 이전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많은 규제 중에서도 M&A 설계과정에서 지주회사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공정거래법의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지주사의 자회사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손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지분율 100%인 경우에 한해 보유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모두 M&A 콘트롤타워인 지주사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들이다.


지난 2010년 SK의 메디슨 인수 포기는 지주회사 지분 규제로 인한 대표적 M&A 실패 사례다. 당시 SK는 신수종 사업확보를 위해 야심차게 메디슨 인수를 추진했지만 대주주인 칸서스인베스트가 주주갈등으로 15.19%의 매각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SK는 지주회사 규제(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40% 지분보유)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인수를 포기했다. 또 CJ그룹은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자회사 일부가 증손회사로 편입됐는데 주주구성이 복잡해 지분율 100%를 채우지 못하게 되자 3개의 증손회사를 매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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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기업의 중소·벤처기업 M&A시 중소기업 지위가 3년에서 7년으로 연장됐고, 기술혁신형 M&A에 대한 세지 지원 요건 완화 등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규제, 일반 지주회사의 창업투자회사(CVC) 소유 등은 여전히 부처간 이견으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은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이기 때문에 벤처·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면서 “대기업이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벤처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모기업의 자금지원, 기술개발, 업무제휴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기업집단 계열사 편입시 뒤따르는 △부당지원행위 금지 △계열사 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등의 규제는 인수주체인 모기업의 집중육성 의지를 저해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대기업들의 인식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적정가격을 받고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팔듯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에 대해서도 모방과 탈취가 아닌 제값을 주고 사들이는 상식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대기업이 기존에 행했던 기술 탈취나 디자인 모방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이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사규에 명문화하는 등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들의 과거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재벌 대기업을 구시대 유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고, 이들을 창업국가의 주인공 역할을 맡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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