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토요워치-착한 소비가 사회를 바꾼다]정직·신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

쓰레기 대란 계기 일회용품 사용 경각심

플라스틱 어택 등 행동 나선 샤이 소비자

"과다한 포장재 감축하라" 민원·집회

공정무역 카페 지도 등도 제작·공유

착한 소비 시장 가파른 성장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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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성수점에서 지난 4월 진행된 ‘플라스틱 어택’ 현장. 소비자들이 구매한 물품의 과대 포장을 벗겨내고, 유통업체 측에 개선을 요구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사진제공=김예원 씨이마트 성수점에서 지난 4월 진행된 ‘플라스틱 어택’ 현장. 소비자들이 구매한 물품의 과대 포장을 벗겨내고, 유통업체 측에 개선을 요구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사진제공=김예원 씨


마켓컬리가 스티로폼 박스나 보냉제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택한 ‘에코박스’. /사진제공=마켓컬리마켓컬리가 스티로폼 박스나 보냉제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택한 ‘에코박스’. /사진제공=마켓컬리


# 지난 4월 이마트 성수점. 장을 보고 계산을 마친 고객 너덧 명이 카트 하나를 둘러싸고 모였다. 이들은 각자 구매한 물건의 포장을 벗겨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토마토, 기다란 비닐봉지에 포장돼 나온 대파, 2중·3중으로 비닐에 휘감긴 ‘1+1’ 제품까지. 몇 사람이 장 본 물건의 포장만 모았을 뿐인데도 카트의 절반이 금세 찼다. 플라스틱 쓰레기 위에는 한 장의 편지가 놓였다. “이마트를 계속 이용하고 싶지만 과대 포장이 마음에 걸립니다. 대안을 마련해 주신다면 마음 놓고 장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대 포장 문제와 관련해 함께 대화하고 개선하고 싶습니다.”

과대 포장에 대한 항의 표시로 포장재를 마트에 남겨두고 오는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던 날의 풍경이다. 국내 첫 플라스틱 어택의 기획자는 환경 운동가도, 전문가도 아닌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주부 김예원(29세)씨다. 김씨는 “플라스틱 어택에 관한 외신 기사를 접하고 국내에서도 시도하면 좋을 것 같아 지인들과 실행에 옮기게 됐다”며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환경 보호를 위한 변화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 새로운 플라스틱 어택 기획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오는 7월1일에는 새로운 기획자의 주최로 서울 상암동 홈플러스에서 기자 간담회를 포함한 대규모 플라스틱 어택이 예정돼 있다. 8월 초에 또 다른 기획자들이 플라스틱 어택을 준비하고 있다.


◇ 쓰레기 대란이 각성시킨 착한 소비?=각자의 생활 속에서 조용히 착한 소비를 실천하던 ‘샤이(shy) 착한 소비자’들이 점차 ‘행동파’로 변신하고 있다. 기업보다 발 빠르고 정부보다 과감한 실행력을 갖춘 이들은 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함께 모여 더 큰 목소리를 낸다. 환경 보호나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도 착한 소비자들의 변신에 한몫했지만 더욱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발생한 ‘쓰레기 대란’이다. 쓰레기 대란은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온라인 식품배송 업계 1위 마켓컬리도 쓰레기 대란에서 촉발된 착한 소비자들의 포장재 감축 요구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마켓컬리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등 포장재를 과다하게 사용한다며 재사용을 포함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마켓컬리는 별도로 포장해 배송해온 냉장제품과 상온제품을 합포장이 가능한 선에서 묶음 배송하기 시작했다. 마켓컬리 측은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인력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는 작업”이라며 “지금도 최적화된 물류 포장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개선 방안을 탐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만을 판매하는 ‘공정무역 카페 지도’를 만들어 공유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또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크루얼티프리(Cruelty-free)’ 화장품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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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플라스틱 어택을 준비 중인 추진팀 역시 플라스틱 어택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매뉴얼북’을 만들 계획이다. 김씨는 “플라스틱 어택 글로벌에 물어봤더니 마트에 공문을 보내 행사를 알리라는 정도 외에는 별다른 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행사를 진행해보니 공문을 보내도 답이 없거나 잘못된 부서로 전달된 적도 있었고 행사를 진행할 때에는 ‘집회 신고를 했느냐’며 직원이 물어와 무섭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매뉴얼 북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착한 소비 어렵지 않아요”=이 같은 소비자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착한 소비는 아직 ‘대세’라고 하기에는 미약하다. 마스터카드가 지난해 발표한 ‘착한 소비 (Ethical Spending)’ 현황에 따르면 아태 지역 1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36점을 기록해 12위에 머물렀다. 심지어 2016년 37.4점(11위)보다 더 떨어진 순위다. 이 조사는 국가별 소비자 500~1,000명을 대상으로 친환경, 공정무역, 기부금 자동적립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지를 묻고 ‘그렇다’고 답한 비율을 100점 만점의 지수로 환산한 것이다.

물론 재활용품 사용 최소화나 로컬푸드 구매 등 다양한 착한 소비의 방식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조사가 현실을 100% 반영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착한 소비가 사회를 바꿀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착한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착한 소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플라스틱 어택을 시작한 김씨는 자신의 착한 소비 습관으로 시장에 갈 때 반찬통을 챙겨가는 방법을 추천했다. 그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비닐 봉투에 담아오는 대신 집에 있는 반찬통에 물건을 담아온다”며 “시장 상인들로부터 반응이 정말 좋다. 자주 가는 정육점 사장님은 복 받을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시고는 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기분 좋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착한 소비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는 윤리적 소비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재료부터 생산 과정에 이르기까지 윤리적인지를 따지는 밀레니얼 세대가 당분간 소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여 국내 착한 소비 시장도 앞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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