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차급에서 독일 3대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차는 별로 없다. 롤스로이스나 페라리같이 처음부터 소수만을 겨냥한 차가 아니라면 포르쉐, 마세라티,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일부 차종만이 독일 3사 차보다 비싼 값을 매겨 차를 팔 수 있다.
이들 브랜드들의 사세는 독일 3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만은 대등하게 경쟁한다. 포르쉐 ‘카이엔’, 마세라티 ‘르반떼’, 랜드로버 ‘레인지로버’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의 대형 SUV 못지 않게 잘 팔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카이엔은 2000년대 초반 강남 사모님이나 청담동 며느리의 차로 인식되다 어느새 ‘강남 싼타페’로 불릴 정도로 대중화했다. 그 다음은 레인지로버로 인기가 옮겨가더니 지난해에는 르반떼 바람이 불었다. 이들 세 차종은 독일 3사 차를 평범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찾는 제품으로도 유명하다. 마세라티 관계자는 “르반떼 고객 중 대부분이 독일 3사 차를 이미 경험해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독일 3대 브랜드에선 더 이상 고를 차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차들은 전장 5m 안팎이고, 폭은 2m에 달해 주차가 불편한데도 여성 고객들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국내 시장에서 이들 세 차종의 경쟁도 볼만하다. 올 봄 레인지로버의 부분변경차가 나온데다 최근엔 카이엔의 3세대 완전변경 신차가 공개돼 이들의 3파전이 재점화됐다. 독일 3사 차보다 고급스런 이미지를 가지 이들 차들의 특징을 알아봤다.
◇명성과 다양한 라인업으로 승부=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가 다른 두 차종을 압도하는 첫 번째 장점은 SUV 전문 브랜드의 차라는 점이다. 랜드로버가 영국의 SUV 전문 브랜드로 명성을 쌓았고 레인지로버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차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1970년 첫 출시 이후 세계에서 170만대 이상 팔리며 럭셔리 SUV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는 유명인들이 많이 탄다는 사실이 2010년대 중반 널리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대유행이 불었다. 멋쟁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청담동과 한남동 유명 식당 주차장에 있는 차 중 절반은 레인지로버라는 농담이 수입차 업계에서 돌았을 정도다. 2015년 953대, 2016년 930대, 2017년엔 1,028대가 팔렸다.
4월에 나온 ‘뉴 레인지로버’는 레인지로버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스탠다드 휠베이스 버전이 먼저 나왔고 롱 휠베이스 차는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프런트 그릴 디자인을 바꾸는 등 대담한 변신을 단행한 것이 특징이다.
레인지로버가 다른 두 차종을 압도하는 또 하나의 장점은 라인업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스탠다드 휠 베이스 5종, 롱 휠베이스 3종 등 모두 8종으로 라인업이 구성돼 있다. 엔진은 4,367㏄ V8 터보디젤, 5,000㏄ V8 가솔린 슈퍼차저 두 가지다. 디젤 엔진의 최대 토크는 75.5㎏·m,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은 565마력으로 둘 다 강력하다. 가격 역시 1억8,750만원부터 3억1,200만원까지로 범위가 넓다.
◇스포츠카 성능, 이탈리아 감성이 매력=마세라티 르반떼의 매력은 이탈리아 자동차 특유의 감성과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이다. 마세라티는 르반떼에 SUV의 외형을,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르반떼는 2016년 제네바 모터쇼 이후부터 2017년 6월까지 전 세계 72개국에서 2만5,000대 이상 판매됐다. 국내 시장에서는 지난해 데뷔해 약 800대가 팔렸다.
마세라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모델로 설정한 차는 포르쉐 카이엔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지난해 디젤게이트 여파로 포르쉐코리아가 카이엔 디젤 판매를 중단한 영향이 르반떼 판매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르반떼는 어디서도 유사한 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있는 디자인을 가졌다. 전장은 5,005㎜로 레인지로버 스탠다드 휠베이스(5,000㎜)보다 길다. 그러나 외형이 워낙 스포티해 시각적으로는 더 작아보인다.
엔진은 디젤과 가솔린 모두 V6 3ℓ급이다. 고성능 버전인 르반떼 S는 430마력, 59.2㎏·m의 성능을 내며 제로백은 5.2에 불과하다. 가격은 1억2,440만원부터 1억6,590만원.
◇왕의 귀환…시장 판도 바꾼다=이런 가운데 최근 포르쉐코리아는 카이엔 3세대를 공개했다. 출시는 11월. 카이엔이 완전변경 신차로 돌아오자 재규어랜드로버와 마세라티 뿐만 아니라 독일 3사도 잔뜩 긴장한 눈치다. 포르쉐 카이엔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각각 1,126대, 930대, 1,490대, 1,194대, 915대가 팔렸다.
이번 카이엔은 큰 폭의 디자인 변화를 단행했다. 프런트 그릴이 완전히 바뀌었고 테일 램프를 비롯한 후면부도 포르쉐의 새로운 패밀리룩을 따라 ‘에지있게’ 마무리했다. 제원이 공개된 모델은 3ℓ V6 가솔린 기본형이다.최고출력 340마력에 최대 토크 45.9㎏·m의 힘을 내며 제로백은 6.2초. 가격은 1억180만원으로 세 차종 중 그나마 ‘착한’ 편이지만 포르쉐코리아는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고가 라인업들을 순차 전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