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계(YS)·동교동계(DJ)·청구동계(JP)로 상징되는 3김은 때로는 같은 편에서, 때로는 대척점에 서 애증 관계를 형성했다. 군 출신인 JP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DJ와 YS는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첫 대결을 벌이면서 야권 지도자로 떠올랐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도입된 대통령직선제는 3김을 한국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히 1988년 치러진 총선에서 YS(통일민주당)·DJ(평민당)·JP(신민주공화당)는 각각 영남·호남·충청 표를 결집하면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었다.
1990년대는 3김 시대의 절정기였다. YS와 JP는 1988년 4월 총선에서 나타난 “야당을 하라”는 민의를 거스른 채 1990년 집권여당과의 ‘3당(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에 참여해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만들었고 1992년 대선에서 YS는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야당 후보인 DJ를 누르고 당선됐다. 1997년 대선에서는 DJ와 JP가 손을 잡았다. DJ는 JP와의 ‘DJP연합’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JP는 DJ정부 초대 총리로서 정권의 한 축을 맡았으나 2001년 9월 내각제 개헌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DJP 공조 파기를 선언했다. 이후로도 JP는 자민련 총재로 대권도전의 꿈을 이어갔으나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하자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