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난 1983년 발간된 ‘과학사기술사사전(科學史技術史事典)’ 연표에는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과학기술 업적 21가지가 소개돼 있다.
‘석빙고→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지리지→농사직설→신찬팔도지리지·향약채취월령→향약집성방·혼천의→대간의대·자격루·갑인자→앙부일구→측우기·수표→칠정산 내외편→훈민정음 28자→철제화포→의방유취·제가역상법→총통등록’ 순이다. 명나라와 일본은 각각 4개와 1개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벌어지고 있던 유럽과 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는 모두 합쳐 20가지가 올라 있다.
물론 연표 숫자로만 비교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지만 조선이 전 세계와 필적할 만한 과학기술력을 보유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학올림픽에 비유한다면 금메달을 절반 정도 휩쓸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이 중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이슬람문명이 저무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600년 전에 세종이 이끈 조선은 세계 최고의 과학 강국이었다.
과학기술 혁신 리더인 세종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선정한 과학기술인으로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산학계몽’이라는 수학책도 열심히 공부하고 간의대를 찾아 천문을 관측하며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것을 즐겼다. 식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였으며 광범위하게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했다. 경연을 주 1회 이상(32년간 1,898회)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고 그레이트 커뮤니케이터(소통에 능통한 이)였다.
위대한 과학혁신 리더인 세종 시대에는 기라성 같은 과학기술인이 즐비했다. 원나라에서 귀화한 엔지니어 아버지와 관노 어머니를 둔 장영실이 드라마틱한 요소로 부각돼 있지만 당시 출중한 엔지니어(이천·장영실·박자청), 천문역산학자(이순지·정인지·정초·정흠지·김단·김돈·김빈), 의학자(노중례·황자후), 지리학자(정척·변계량·맹사성·권진·윤회·신장) 등이 많아 찬란한 과학기술의 꽃을 피웠다.
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기술문명학연구소장은 “세종은 경제·복지·군사·통치·예술문화 등 분야별로 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며 “스스로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수많은 과학 인재를 키우며 집현전에서 학문방법론을 정립해 과학기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