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원전 밸류체인이 무너진다] '세계 1등' 타이틀 코앞인데..인재풀 사라져 수출도 막힐 판

■ 미래 한국 원전 뿌리째 흔들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美도 안전성 인정

건설단가 日·佛 반값..가격경쟁력·효율성도 압도적

전문인력 사라지면 60년 공들인 기술 사장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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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APR-1400) 기술이 세계 1등이라는 타이틀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이를 이끌어야 할 ‘미래세대’가 사라지면서 원전 산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설에만 10년, 운영까지 더하면 길게는 50~6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원전 산업에서 인재풀이 사라질 경우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수출시장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원전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은 주역은 바로 전문인력이었다. 지난 5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이 전체 6단계로 이뤄진 안전성 평가 중 4단계를 통과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APR-1400에 적용된 2,225개의 기술 모두가 ‘안전’하다는 게 NRC의 판단이다. 남은 단계가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 과정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인증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자국에 지어도 안전하다고 기술적 판단을 내린 타국의 원전은 APR-1400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NRC 인증은 기술적 검토는 다 끝난 상황이다. 지난주 NRC 측 인사를 만났는데 기술적 검토를 ‘온 스케줄’로 끝낸 경우가 지금까지는 없었다며 놀라워했다”며 “수출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프랑스와 일본 원전은 인증을 신청했다가 중도포기했다”고 말했다.


우리 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는 평가는 미국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유럽 안전기준에 맞춰 개량한 EU-APR도 10월 유럽사업자(EUR) 인증을 통과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2012년에 새로 마련된 유럽의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지난해 12월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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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3세대 원전 중에서도 APR-1400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선 건설단가가 압도적으로 싸다. 한국형 원전의 건설단가는 1㎾당 1,556달러로 일본(3,009달러), 러시아(2,993달러), 프랑스(3,869달러) 대비 반값 수준이다. 품질보다는 가격경쟁력으로 밀어붙이는 중국(1,763달러)과 비교해도 13.3%가량 싸다.

짓고 난 뒤 발전소의 효율성도 압도적으로 좋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0 발전업 사업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의 발전비용은 1㎾h당 3.1센트다. 중국(3.2센트), 러시아(4.35센트), 일본(4.97센트), 프랑스(5.64센트) 등 경쟁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쌌다. 노형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덕분에 운전유지비도 1㎾h당 0.97센트로 중국(0.78센트)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고장정지율도 1.1%로 프랑스(8.0%), 일본(3.9%)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전문인력이 사라지면 60년을 공들여 갖춰놓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는 곧바로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진다. 2017년 원전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 원전 산업 분야의 매출액은 26조6,324억원. 발전사업자를 뺀 기자재 산업과 연구기관 등에서 올린 매출만 6조6,376억원에 달한다. 신규 원전이 사라지는 오는 2023년이 되면 이들 매출도 급감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수출시장이라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전문인력 없이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기술적·경제적 접근이 필요했던 문제에 원전이 사회악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정치적 접근을 하면서 미래세대마저 원전을 버렸다”며 “산업 생태계가 사라지면 전문인력이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수출시장에서도 수주경쟁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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