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포괄임금제 규제-찬성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무한 노동' 조장 제도 이젠 폐기해야

공짜 야근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포괄임금제를 손보겠다는 정부 방침에 찬반 양론이 거세다.

포괄임금제는 실제로 몇 시간을 더 일하는지에 상관없이 미리 정한 초과 연장근로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하거나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맞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거나 제한하는 개선 방안을 조만간 내놓기로 했다. 지난 2016년 기준 전체 사업장의 30% 정도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네이버 등 대기업들이 근무시간과 근무 형태를 조정하면서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했다. 포괄임금제 제한 찬성 측은 그동안 적은 비용으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던 수단으로 활용된 제도를 근로시간 단축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법정 근로수당의 엄격한 적용은 기업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고 포괄임금제까지 없애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고용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을 꼽으라면 임금을 드는데 그다음으로 꼽는 노동시간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논의되고 있지만 적정 임금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 시간 축소로 이어진다면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시간과 임금은 동시에 풀어야 할 숙제다.

사실 임금과 시간의 문제는 얽혀 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300시간 많다. 우리나라를 장시간 노동 국가로 만든 데는 ‘일을 많이 시키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풍토가 있다. 그 바탕에는 ‘초장시간 노동’을 해야 생활임금을 벌어 생계를 영위할 수 있도록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제도와 정책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이후 분출하는 적정 분배의 요구를 총액임금제로 억제하려던 6공화국 노태우 정부의 노동 정책은 전근대적인 임금 구성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임금 인상 요구를 수당 신설과 상여금 증대로 대처해 기본급 구성비율이 절반 이하가 되는 기형적 임금 구성이 만들어졌다. 장시간 노동체제가 온존하는 한 임금 구성의 문제는 풀릴 수 없다.


포괄임금제는 바로 기형적 임금 구성의 문제와 장시간 노동체제가 결합해 생겨난 제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업무 특성상 시간 외 노동 산정이 어려운 업종의 경우 그중 일부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설정한 관행에서 비롯됐다. 올해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 26개 업종에 이르는 근로시간 예외업종은 사실상 무한노동이 가능한 체제를 인정했다. 그만큼 긴 노동시간을 모두 임금 산정기준에 넣지 않았던 관행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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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이미 지급했다고 보고 임금을 산정하기에 실제 행한 노동시간보다 적게 임금을 지급해 사무직에서 일상화된 서비스 잔업을 정당화하는 제도다. 아울러 이미 통으로 지급됐다고 보기에 연장·야간·휴일노동을 무제한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은 길게, 임금은 적게 지급하는 관행을 촉진하는 제도로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근로의 대가를 명확히 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의 정신도 위배하는 불법에 해당한다.

앞으로 포괄임금제를 금지한다는 고용노동부의 발표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자기모순이다. 근로기준법 집행의 주체가 새삼스러울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반대로 포괄임금제와 사실상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부불노동)인 서비스 잔업의 관행이 그만큼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었음을 방증한다. 근로시간에 관한 한 근로감독이 거의 없었던 것도 포괄임금제 관행에 대한 명확한 방침이 없었던 한계의 반영이다.

1주일이 7일이라는 상식적 판단에 근거해 주 최대 노동시간 52시간을 시행해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포괄임금제 관행을 제어하지 않을 수 없는 주무부처의 현실적 판단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체제의 씁쓸한 자화상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포괄임금제는 시간 산정이 어려운 특정 업종, 직무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계층에 최저임금을 하향 적용하는 방편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임금 항목을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누출해왔다. 산입범위 확대로 그나마 있던 유일한 복리후생비인 점심값 지원마저 사라지고 해마다 산입범위가 확대 적용되므로 임금 항목의 자의적 조정을 통해 포괄임금제 방식이 더 확산할 위험성도 있다. 포괄임금제 금지가 필요한 중요한 이유로 눈여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종이나 직무에는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손쉬우나 정당하지 않은 해결책에 만족하지 말고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업무 편성 방식과 함께 대체휴가 방식 등 연간 노동시간 또는 생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를 통해 대처해나가야 한다. 전근대적인 제도인 포괄임금제에서 혁신적이며 동시에 안정적인 노동시간제도와 작업 조직 방식의 각축장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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