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4,307건.’ 지난 4월26일 화웨이는 세계지적재산권(IP)의 날을 맞아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를 공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웨이가 별다른 원천기술 없이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의 IP를 도용해 성장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관측은 당시 발표로 틀린 것으로 판가름났다. 발표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내 특허 6만4,091건, 해외 특허 4만8,758건을 등록 신청했으며 이 중 7만4,307건이 특허로 인정받았다. 글로벌 특허 시장의 최강자로 불리는 삼성전자(005930)가 1·4분기 기준으로 12만3,722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웨이의 성장세가 눈부시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특히 화웨이 보유특허 중 90%가량은 발명 관련 특허라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은 배경 중 하나다. 화웨이는 또 지난해 유럽특허청(EPO)에 2,398건의 특허를 신청해 단일 기업 기준 특허 최다 출원 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28일 글로벌 ICT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글로벌 특허경쟁에서 선두 사업자들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 10년간 R&D에 3,940억위안(약 66조원)을 투자했으며 관련 인력만 전체 구성원의 40%가 넘는 8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R&D 투자금액은 전체 매출액의 15%가 넘는 897억위안(15조원)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7%가량인 16조8,000억원을 R&D에 투자한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투자액수는 적지만 매출 대비 R&D 투자율은 두 배 수준이다. 숀멍 한국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화웨이는 업계 전체에서 가장 많은 R&D 인력을 가졌다”며 “R&D 인력 중 많은 비중을 보안에 투입하고 있으며 관련 기술 자체도 굉장히 앞서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의 R&D 투자는 미국 업체와 비교해도 눈에 띈다. 미국 시장에서는 아마존이 지난해 226억달러(25조4,000억원)를 R&D 부문에 투자해 1위에 올랐으며 이어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166억달러), 인텔(131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123억달러), 애플(116억달러) 순이었다. 화웨이의 R&D 투자금액이 인텔·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글로벌 ICT 강자들을 웃도는 미국 3위 수준인 셈이다.
화웨이의 R&D 분야 성과는 27일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상하이’ 전시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화웨이는 참가업체 중 최대 규모(1,208㎡)의 부스를 꾸려 경쟁사인 노키아와 에릭슨을 압도했다.
량쥐창 차이나모바일 기업연구소 부원장은 “중국에서도 화웨이의 R&D 투자는 최고 수준이며 기술력으로 승부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기업”이라며 “일을 맡기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120% 이행해올 뿐 아니라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먼저 제안해 놀랄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본사를 둔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 GFT테크놀로지의 플로리안 베커 중국 사업 개발 담당은 “화웨이 부스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기술 수준이 높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매년 엄청난 자금을 R&D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도 이 같은 투자를 이어간다면 5G에서만큼은 중국 기업들이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ICT 업체 중에는 화웨이 못지않은 강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중국의 ‘모바일 굴기’가 이미 현실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13%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ZTE를 비롯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저가폰’ 열풍을 일으킨 샤오미, 글로벌 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텐센트, 글로벌 온라인 유통 시장 장악을 꿈꾸고 있는 알리바바, 포털은 물론 인공지능(AI) 분야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바이두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이들 업체 또한 막대한 R&D 비용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2017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R&D 투자를 많이 한 기업 2,500개 중 중국 기업이 377개를 차지해 미국(821개)과 유럽연합(567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중국 ‘모바일 굴기’의 힘이 R&D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특히 이들 2,500개 기업의 R&D 투자액이 평균 5.8% 늘어난 반면 중국 업체들은 무려 18.8%를 늘려 미국(7.2%)이나 유럽연합(7.0%)을 크게 앞질렀다.
국내 ICT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폐쇄적 시장환경과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R&D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핵심 성장동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중국 업체들이 AI·자율주행차·5G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에서만큼은 글로벌 선두사업자와의 기술격차가 없거나 오히려 앞서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선 듯하다”고 말했다. /양철민기자 상하이=양사록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