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무역전쟁 파고 '갈등관리'로 넘어야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發 무역보복 위협 정례화

'일시 휴전' 위한 양보는 안돼

내수 기반 경제 효율성 높이고

서비스·IP 수출산업 육성할 때




주요2개국(G2) 미국과 중국이 관세보복을 주고받고 있다.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까지 25%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나서자 중국은 500억달러 규모의 맞보복을 공언했다. 유럽연합(EU)도 대미 보복관세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에 미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2차 보복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은 공정무역 패러다임을 내세워 제조업 부문 무역수지 적자가 쌓이고 있는 것 자체가 불공정 교역의 결과라는 논리다. 특히 철강·알루미늄·자동차·선박·반도체 부문의 누적 적자는 미국의 국가안보 대응능력도 약화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적자 폭이 해소될 만큼 추가 관세를 수입 공산품에 부과하는 게 공정무역이라는 입장이다. 중국과 EU는 공정한 룰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입각해 서로 관세를 양허하고 다자교역을 활성화했는데 그 결과 발생하는 특정 부문의 교역수지 적자를 관세보복으로 해소하려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국제 공통의 공정무역 개념을 정립하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 WTO 제소를 통해 어느 쪽이 불법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크게 도움은 안 된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보복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 권한은 국가안보를 원용하는 회원국 측에 있다는 것이 WTO 판례의 입장이고 미국이 패소한다 해도 판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승소국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역보복이기에 보복의 악순환만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국제교역 관계를 자유교역 패러다임이 아니라 파트너십 체제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정립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특혜 무역협정이 체결돼 더 이상 다자 자유무역 체제는 국제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세기에 걸친 자유교역 체제가 부의 양극화 심화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대내적 부의 재분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 그 대신 교역상대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압박을 가하는 것은 대내적 인기와 단기적이나마 교역 성과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통상 정책이 미국 사회에서 먹히고 있는 것이고 유럽에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로 화답하고 있다. 중국은 G2 통상보복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500억달러 대응보복을 공언하고 있으나 무역보복 능력에서 상호 수입액수를 비교하면 미국 능력의 4분의1밖에 안 되고 일대일로 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하는 마당에 무역전쟁으로 국제투자의 불안정성을 키워서는 안 되기에 미국 측에 양보를 제공하고 보복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그걸 잘 아는 트럼프 진영이기에 무역전쟁 치킨게임의 판돈을 올리고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잃을 게 많아지는 중국 측의 양보 가능성은 커진다. 결국 새로운 미중 파트너십은 타협에 의해 형성될 것이고 그 핵심은 중국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3분의1 이상 줄이고 하이테크 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 경제팀은 대외 무역보복 전문가들이기에 집권기간 내내 주기적 무역보복 압력을 통해 산업 정책을 실현해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교역상대국 입장에서는 미국발 주기적 보복 위협을 관리하며 새로운 타협을 통해 대미 파트너십을 업데이트해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관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우리는 대미 파트너십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나. 마치 미국이 제시하는 요구들을 모두 수용해버리면 한미동맹 관계가 과거처럼 안정화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면 아마추어적이고, 그렇게 국민들에게 선전해댄다면 무책임하다. 어차피 다시 올 무역보복의 위협을 계산하고 지금 무엇을 주고 무엇을 챙길지를 판단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번 한미 FTA 재협상에서 트럼프의 철강 관세를 모면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철강 수출물량 쿼터제를 수용해버렸다. 눈앞에 벌어진 작은 전투의 휴전을 위해 더 큰 전쟁에서의 레버리지(협상지렛대)를 포기한 셈이다. EU·중국 등과의 연합전선을 펼칠 가능성이 사라졌고 철강을 넘어 자동차·선박·반도체로 이어지는 관세보복 게임에서 쿼터제를 미리 예약당한 것과 다름없다. 이미 국제사회는 파트너십 패러다임의 갈등관리 체제로 돌입해 있는데 우리는 당장의 갈등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통상 정책 결정 체제의 근본적 대수술이 진행돼야 하며 내수 기반의 대내적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세보복으로부터 자유로운 서비스와 지재권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산업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