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포기함으로써 잃게 되는 편익의 합을 농업의 기회비용이라고 하자. 만약 실제로 농업을 포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식량이 생산되지 않아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고 농업이 인간에게 주는 모든 가치를 잃을 것이다. 그러한 가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농작물은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다. 논은 물을 가둬 홍수를 예방하고 이 물은 지하수원이 된다. 생물 다양성을 확보해 생태계를 유지한다. 농촌은 도시민의 휴식처 기능을 한다. 농촌 마을은 전통문화를 계승·보전한다.
이 기능을 농업의 다원적 기능, 혹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라고 부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산출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244조원이다. 농업의 기회비용인 셈이다. 그러나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 공익적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기 때문에 농민에게 돈으로 지불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참 어이없는 모순을 발견한다. 이처럼 엄청난 공익적 가치를 가진 농업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농업예산은 갈수록 줄어든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업은 엄청난 피해를 입지만 대책은 안 보인다. 쌀값은 어떤가. 쌀값이 오르기는 했어도 아직 20~30년 전 수준에 불과하다. 농민은 해먹고 살 것이 없다. 이 상태로 가면 고령화된 농촌은 급속히 붕괴할 것이다.
농업이 가치만큼 대접받는 방법은 없을까. 많은 숙고가 필요했다. 그래서 얻은 방법의 하나가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정부의 지원 책무를 명시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처음으로 농업가치 헌법 반영토론회를 열었다.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업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이어졌다. ‘농업가치 헌법반영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8월에 다시 한 번의 토론회를 거친 이 운동은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맞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해 모든 농업 관련 기관들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농협중앙회장이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서명운동은 단 한 달 만에 1,000만명을 넘었다. 전국적으로 분위기가 성숙한 것이다.
문제는 국회였다. 싸움질만 하다가 국회는 헌법안 마련에 실패했다. 그러나 성과는 있었다. 비록 상정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출한 헌법안에 농업의 공익가치와 정부의 지원의무가 명시된 것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농업의 공익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됐다. 찬성하는 의원들도 많다. 이제 국회가 헌법안을 마련하는 일이 남았다. 또 한 번의 토론회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