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으로 구성된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오는 10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를 초청합니다. ‘기업과 혁신생태계’를 주제로 대담을 가지기 위해서 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전경련이 장 교수를 비판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11년 장 교수가 쓴 책‘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두고 “장 교수는 시장이 아닌 정부 주도의 암묵적인 계획경제를 지지하고 있으나 이는 성장을 저해하고 분배의 효율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장 교수가 노동 시장에서 결정되는 소득이 개인의 능력을 반영하지 않으므로 정부가 소득재분배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 반박했습니다. 한경연은 “노동 시장의 소득 분배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분업 체계와 투자의 결과인 개인의 부가가치 생산성”이라며 정부의 노동 시장 개입이 취업 서비스의 성장을 억제하고 장기 실업자의 비중을 높여 분배의 효율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7년 전 장 교수와 대립각을 세웠던 전경련이 이번에는 장 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가집니다. 이는 최근 위상이 급격하게 위축된 전경련의 처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전경련은 한 때 재계를 대표하는 싱크탱크 였으나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각종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서 그 위상이 크게 약화됐습니다. 삼성, LG(003550), SK(034730) 등 대기업들이 전경련을 탈퇴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다른 경제 단체에 밀리는 등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라는 상징성도 많이 약해졌습니다. 살림살이도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주요 회원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회비가 급감했고,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 빌딩도 절반 가까이 텅텅 비면서 임대료 수익도 크게 줄었습니다.
이번에 전경련이 과거 비판했던 장 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가지는 것도 이처럼 갈수록 좁아지는 입지를 만회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전경련은 장 교수 외에도 지난달 27일에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초청해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간 전경련이 어려워지면서 박사급 핵심 인력들이 대거 이탈해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이 약화된데다 재계에서도 전경련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