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다시 눈을 감기까지 숱한 선택을 한다. 알람이 울린 지금 이 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날지부터도 우리 삶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의 무게를, 기회비용의 크기를 쉽게 가늠하진 못한다. 매일 반복하는 선택이 우리 삶을 뒤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해보자. 선택이란 무언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더 많은 장점을 가진 것을 고르는 대신 장점과 단점을 두루 살피고 그중 무엇을 버릴지 택하는 것. 그런데 인간은 늘 옳은 선택을 할 만큼 합리적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주 호모 주리티쿠스(정의로운 인간)도 호모 사피엔스(현명한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라고 착각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가 영화 ‘킬링디어’(Killing of Sacred Deer)를 통해 벼랑 끝에 선 인간이 무엇을 버릴 수 있는지 묻는다.
여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중산층 가족이 있다. 남편 스티븐(콜린 파렐)은 외과 의사, 아내 안나(니콜 키드먼)는 안과 의사, 아들 밥과 딸 킴은 반듯하고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런데 남편은 주기적으로 한 소년을 만난다. 그의 이름은 마틴(배리 케오건). 이 둘의 관계가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소년은 스티븐이 수술 중 사고로 죽인 한 환자의 아들.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의료과실을 숨긴 스티븐에게 소년이 복수를 결심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란티모스 감독의 선택 실험은 잔혹하고 충격적이다.
평온하던 어느 날 아침, 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걷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 뒤 딸에게도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소년은 죗값을 치르려면 아들과 딸, 아내 중 누가 죽을지 스티븐이 직접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사장이 신전에 피를 바칠 희생양을 고르듯 남편은 자신의 죄를 사해줄 희생양을 골라야 한다. 한 명을 잃든 모두를 잃든 둘 중 하나의 선택만 존재할 뿐이다. 세심하게 희생양을 골라내는 남편과 피의 제사에 제물이 되길 원치 않는 세 사람의 눈치 게임은 그야말로 잔혹하기 짝이 없는 실험이며 웃음기 하나 섞을 수 없는, 서늘한 우화다. 감독은 “무엇이 옳은지 틀린 지 그 정의에 대한 판결은 누가 할 수 있는지, 거대한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편의 사회과학 실험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인간의 비루한 본성은 영화관을 떠나는 관객들을 무겁게 짓누른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2009년 ‘송곳니’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 수상, 2016년 ‘더 랍스터’의 심사위원상 수상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다. 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 등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대배우들 가운데서도 신예 배리 케오건의 연기가 가장 빛난다. 12일 개봉
, 사진제공=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