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환자 안전과 거리 먼 내시경 수가

박병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의사·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보험이사

박병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의사·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보험이사



우리나라는 내시경 의료의 접근성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다.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어 위암·대장암 조기 진단율이 크게 향상되고 사망률은 낮아졌다. 그런데 의료 현장에서 내시경 검사를 권유하면 “검사를 받고 못 깨어나면 어떡하죠”나 “(위·대장 등에) 천공이 생기지는 않겠죠”와 같은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다. 검사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하는 환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 걱정과 불안은 내시경 검사 중 발생하는 합병증이 늘어나 생긴 것이 아니다. 환자 안전의 강조, 이에 대한 언론 보도 등 사회적인 관심이 커진 것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최근 건강검진 관련 의료분쟁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100건 중 내시경 검사와 관련된 사건이 45건으로 가장 많았다. 대장내시경 중 천공 발생 21건, 위내시경 수면마취 관련 손상 10건 등이다. 진정내시경 후 발생한 환자 낙상사고에 대한 법원의 배상판결 내용을 보면 진정내시경에 대한 설명과 기본적인 조치를 했더라도 병원에 주의의무 소홀 책임이 있다고 한다.


내시경과 관련된 의료분쟁을 언론 보도로 접할 때마다 환자와 가족들이 겪을 고통과 의료사고를 막지 못한 의료진의 고충이 떠올려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시경 검사로 인한 환자 안전사고는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더라도 불가항력으로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의 노력으로 예방 가능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의료기관은 안전한 내시경 검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실제로 안전도는 많이 향상됐다. 그러나 환자의 안전은 지침을 내려주고 지키라고 권고하며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향상될 수 없다.

관련기사



우리나라의 내시경 건강보험 수가(酬價·서비스 가격)가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기관들은 빠른 시간 내에 많은 환자를 검사해야만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안전한 내시경 검사를 위해서는 시술 전에 환자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시술 중에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검사해야 한다. 또 시술이 끝난 뒤에는 환자의 회복과정을 꼼꼼히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검사를 해야 한다면 이런 일련의 과정은 축소되거나 생략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바로 환자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한 검사를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적정 수의 내시경 검사만으로도 최소한의 수익이 보전될 수 있도록 내시경 수가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내시경 시술 중 일부 고난도 시술의 수가는 올해 선택진료비 폐지, 상복부 초음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에 따른 손실보상으로 일부 소폭 인상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조치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시경 전체 시행 건수 및 진료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부위장관내시경, 대장내시경, 결장경하 용종절제술 등의 시술은 이번 수가 인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상부소화관내시경 검사의 경우만 봐도 수가(상대가치점수×점수당 단가)를 결정하는 상대가치점수가 622.40점으로 지난 2008년 606.04점보다 2.7% 오르는 데 그쳤다. 10년 전과 거의 변화가 없다. 대장내시경과 결장경하 용종절제술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인력·장비를 투입하며 환자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보상은 제자리인 셈이다.

합리적 보상 없이 의료진과 의료기관에 일방적 희생을 요구한다면 환자안전 향상은 한계가 있다. 안전한 내시경을 위해 정부는 내시경 수가 정상화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