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는 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방조와 국고손실 방조 혐의로 기소된 이재만 전 비서관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재판 도중 보석으로 풀려났던 두 사람은 재수감됐다.
재판부는 국정원 특활비를 개인적인 뇌물로 받은 안 전 비서관에겐 벌금 2,700만원도 선고했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 3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2016년 9월 국정원장들에게서 특활비 35억원을 상납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과는 상관없이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에게서 1,350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국정원이 청와대에 특활비를 지원한 것이 예산을 전용한 것이긴 해도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앞서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과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 예산을 정해진 목적과 달리 청와대에 지원하라는 대통령 지시는 위법함이 명백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기관이자 감독을 받는 국정원장이 대통령 지시를 거절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 이전에도 국정원 자금을 청와대 등 외부 기관에 지원한 사례가 있는 점 등을 보면 원장들로선 국정 운영과 관련한 관행적 자금 지원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실제 국정원장들의 업무와 관련해 청와대나 대통령 지원이 필요한 현안이 있었다거나 편의를 받았다고 볼 자료도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의 뇌물 수수를 방조했다는 혐의는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일 열리는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 선고 공판에서도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부는 2016년 9월 국정원이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한 2억원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관련 증거들을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은 돈이 전달된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무죄 판단을 마친 재판부는 이 전 비서관에게 “국정원 예산은 목적에 상관없이 사용돼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직접 수령해 관리하고 집행했다”며 범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적했다.
안 전 비서관에도 “대통령의 위법한 예산 지원 지시를 남재준 원장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이헌수에게서 뇌물을 받고도 직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뉘우치지 않았다”고 양형을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정 전 비서관에겐 “안봉근 요청으로 한 차례 대통령에게 돈을 전달했을 뿐 직접 섭외나 집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이날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정 전 비서관은 선고 직후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아프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