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인 기 소르망(사진) 전 파리정치대 교수가 한국의 대통령제를 ‘선출된 독재’라고 표현하며 헌법 개정을 통한 대통령 권력 견제를 강조했다.
소르망 교수는 12일 제헌 70주년을 맞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사회의 의회와 헌법’ 학술대회에 참석해 ‘세계화와 즉각적 의사소통 시대에서 국민으로의 권력 이동’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개헌을 통해 담아야 할 아홉 가지 원칙을 소개하며 그중 하나로 ‘권력 간 균형’을 제시했다. 소르망 교수는 “선출적 독재가 대통령 성격이나 성향 때문에 발생할 수 있지만 한국의 제도 자체가 권한 남용을 유도할 여지가 있다”며 “권력의 균형과 견제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 간 적절한 균형을 찾는 방법으로는 ‘의회의 총리 선출권’을 제안했다. 의회에서 선출돼 일상 국정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와 국가 주권 수호를 담당하는 선출직 대통령을 명확하게 구분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상징적 권한을 갖고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하는 독일식 모델이 대표적이다. 소르망 교수는 “의회는 여러 가지 차원의 논의나 신의가 이뤄질 수 있는 유일한 장”이라며 “의회는 정당들이 논의하면서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 권한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를 소환해서 의견을 듣고 청문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미국 상원과 하원 의원들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 인사와 대통령에 대해 청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국회의 역할 강화를 주문했다. 국회의 역할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 분산도 언급했다. 대통령 단독 임명이 아니라 국회 의장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 한국이 개헌에 담아야 할 원칙으로 △시민권의 정의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지방권한의 강화 △사법부 독립 △표현의 자유 △반대자의 권리 △양성평등 등을 제안했다.
한편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패디 토스니 전 캐나다 하원의원도 “의회를 통한 참여와 책임성 강화를 위해 개헌으로 국가 거버넌스 내에서 의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