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지난 2015년 회계기준 변경의 적절성에 대한 감리를 금융감독원에 다시 지시하면서 삼성바이오는 또 한번 감리를 받게 됐다. 행정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는 위법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특정돼야 하는데 금감원이 내놓은 조치안은 증선위의 판단 근거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증선위의 조치내역을 살펴보면 사실상 2015년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분식회계는 사실상 무혐의로 종결하고 공시 위반에 대해서만 징계처분을 내렸다. 금감원이 다시 특별감리를 시행해 또 다른 조치안을 내놓은 뒤 증선위에서 심사해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는 판단 보류다. 쉽게 말해 법원이 검찰 역할을 하는 금감원에 2015년 이전 자료를 감리해 다시 기소하라고 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1년간 특별감리를 했음에도 논리적 완결성이 떨어지는 점이 드러난 만큼 금감원 감리의 신뢰성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증선위의 이번 판단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삼성 등 대기업을 향한 정부의 공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다 자칫 이어질 투자자들의 소송을 현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부분도 봤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등과 공시 누락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고의 공시누락과 삼성 승계와의 연관성을 묻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조치로 삼성바이오가 상장폐지 절차를 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시간외거래에서 삼성바이오 주식거래를 정지시켰지만 아직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은 아니라고 밝혔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의 회계위반에 대한 검찰 고발만 있고 회계위반 금액은 아직 없는 만큼 현재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증선위가 반쪽 결론을 내리며 금감원에 조치안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2015년 회계처리가 아닌 이전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임시 증선위에서 증선위원들은 “2012~2014년도까지 봤어야 2015년에 바꾼 회계처리가 옳은 방향인지, 잘못된 방향인지 판단할 수 있는데 금감원이 그 부분을 놓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임시 증선위 이후까지만 해도 증선위원들의 2015년 이전 자료 요청이 분식회계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조치안 자체를 보완하라며 되돌려보낸 것은 증선위원들이 회계기준 변경 시점의 적절성 자체를 문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증선위원들이 금감원의 조치안을 문제 삼기는 했지만 금감원으로 사건으로 돌려보내면서까지 2015년 이전의 회계처리를 살피고 있는 만큼 삼성바이오의 회계 위반 결정이 무혐의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증선위원들이 2015년 이전에 회계기준을 변경했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이 고의라고 보기 어려워져 삼성바이오가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고의적으로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논리적 근거는 합병 시점과 회계기준 변경 시점이 같기 때문인데 2015년 이전에 회계기준을 변경했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고의가 아닌 과실 쪽에 무게가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결론이 나도 금감원은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선위에서 금감원을 상대로 감리를 다시 요청한 일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1년 넘게 특별감리를 벌였지만 증선위에서 자신들의 논리로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특히 금감원의 특별감리 당시 논리와 조치안의 논리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삼성바이오는 감리위와 증선위에서 금감원이 특별감리 과정에서 바이오젠과 콜옵션 계약을 맺은 2012년 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전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가 조치사전통지서에는 반대로 관계회사 전환이 문제였다고 입장을 바꿨다고 위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