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계단이 하나 있으면 싶었습니다. 동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 만남의 광장이자 인디 밴드들의 공연장소가 되는 그런 계단 말입니다.” (이현호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지난 4월 서울 마포구의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는 거대한 노란색 계단이 인상적인 빌딩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오후2시께 햇볕이 가장 뜨거울 때쯤이면 더위를 피해 이 계단에 쉬었다 가려는 이들로 붐빈다. 노란색 배경을 바탕으로 ‘셀카’를 찍고 밀렸던 전화통화를 하다가 간다. 1970년대 중반 지어진 KB국민은행 지점을 허물고 복합문화시설로 재단장한 ‘청춘마루’가 만든 홍대의 한 광경이다. 이 교수는 “계단이 항시 개방된 공간이었으면 했는데 오후9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면서 “공간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홍대 건축대학 교수 첫 공동 프로젝트
홍대 앞 지켜온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뼈대만 남기고 내부 인테리어 확 바꿔
노란색 계단이 지하 1층에서부터 옥상인 3층까지 꺾여 올라가며 건물을 관통한다. 지하에서는 공연을 위한 무대인 계단이 1층에서는 밖으로 열린 옥외공간이 되고 다시 2층에서는 실내 갤러리가 됐다가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의 루프톱이 되는, 실내와 실외공간으로의 변신을 거듭한다. 특히 1·2층은 절반 가까이 허물어 계단형 공간을 만들었다. 계단을 지나 건물 우측으로 가면 내부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밴드 공연, 토크 콘서트 등이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다.
노후된 건물에 대한 KB국민은행의 리모델링 의뢰를 맨 처음 받은 것은 이현호 교수였다. 이 교수는 “건축가로서 홍대 한복판,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있는 공간의 설계를 맡는다는 것은 정말 탐나는 일”이라면서 “또 유명 건축가셨던 김수근 선생님의 건축물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보존하고 싶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영수·이경선·장용순·김수란 교수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이로써 홍대 건축대학 교수들의 첫 공동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인상적인 빌딩으로 재탄생
노란 계단 지하1층부터 옥상까지 관통
간접조명+자연 채광…따뜻한 느낌 표현
건축가 김수근이 세운 건물의 하얀색 콘크리트 뼈대는 남겨둔 채 내부 인테리어를 바꿨다. 대신 3층을 증축해 루프톱을 만들고 지하공간도 기존보다 두 배로 넓히는 등의 변형을 줬다. 건물 곳곳에서 옛 건물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한 예가 테라조 바닥이다. 테라조는 옅은 회색 바탕에 진한 회색이나 검은색의 작고 불규칙한 알이 점점이 박힌 바닥재로, 과거 관공서나 학교에 많이 쓰였지만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테라조로 만들어진 옛 건물 계단은 그대로 남겨뒀다. 감추기보다 살렸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테라조의 무늬를 살짝 변형시킨 무늬를 담은 대리석 의자들을 건물 곳곳에 설치해 현대적인 느낌을 추가했다.
1층 로비 벽면에는 예전 건물에 있던 붉은 갈색의 벽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로 벽을 만들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격이 저렴한 벽돌 벽이 많았다. 벽돌은 싸지만 벽돌을 쌓는 인건비가 비싸지면서 요즘에는 벽돌 벽 시공이 드물다. 기존의 벽돌 벽을 뜯어내거나 감추기보다 그대로 남겨 옛 은행 건물 특유의 운치를 살렸다.
홍대 ‘명물’ 된 복합문화시설
작품 전시·밴드 공연·토크콘서트 열려
입장 자유로와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
스테인리스와 유리는 새롭게 추가한 재료들이다. 옛 건물의 흰색 콘크리트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리로 이뤄졌다. 지하 1층도 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리로 마감해 지하공간 특유의 답답함을 줄이고 바깥공간과 연결된 느낌은 살렸다. 2층의 아카데미는 스테인리스 재료를 사용해 가장 힘을 준 공간이다. 벽면을 스테인리스로 마감해 최첨단 작업실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1층 옥외계단 천장에는 스테인리스 슈퍼미러가 달려 있어 계단과 홍대 거리의 모습을 반사시켜 보여준다.
간접조명도 청춘마루의 매력 중 하나다. 강한 조명 대신 벽면이나 바닥 안에 설치된 조명을 통해 은은하게 공간을 밝힌다. 자연 채광과 어우러지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교수는 “펜던트를 감추고 미니멀 하게 설치했다”면서 “마치 청춘이 그러하듯 공간 자체가 빛을 발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개인 건축사무소도 운영하고 있지만 ‘청춘’을 주제로 건축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청춘을 주제로 건물을 지을 일이 없었다”면서 “학교 학생들도 이 공간을 좋아해주고 지나다니면서 건물이 잘 쓰이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