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조선은 왜 여성에게 가혹했나

■장병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간통 혐의로 사형 처하는 등

조선시대 이혼·성범죄 실상

실록·고문서 통해 상세히 분석

'정절 이데올로기' 병적 집착이

여성에 대한 강한 규제로 이어져




‘하급관리였던 이윤정의 아내가 한 늙은 거지와 함께 인천부 안에서 걸식하고 다니다가 아는 사람에게 발각되어 그의 고발로 의금부에 잡혀 들어가 심문받았다. 윤정에게는 정처를 소박하여 떠돌이로 만든 죄만을 적용하였다’-선조실록 16년 4월 15일

조선시대에 이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혼한 여성의 삶은 비참했다. 이 기록에서처럼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전통사회에서 이혼당한 여성들은 친정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재혼하지 않는다면 길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가부장적 원리 속에서 자녀들에 대한 친권 역시 남편에게 주어졌다. 신간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혼인·이혼·간통·성폭행을 둘러싼 법과 풍속을 세세하게 살펴 그 시대 여성의 삶을 돌아본다. 저자인 장병인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여성사 연구에 천착해온 역사학자다. 당시 한국 여성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거의 없어 아주 기초적인 사실 확인부터 시작해야 하는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시작했지만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여성사 영역의 새로운 연구 주제를 개척해왔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강한 규제는 성리학이라는 특정 사상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사회 구조적 요인, 특히 지배층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봤다. 간통에 대한 처벌을 예로 살펴보면 간통한 누이를 죽인 이에 대해 “자기에게 누가 미칠 것을 면하려고만 했을 뿐 털끝만큼도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며 분노한 효종 때만 해도 성리학 이념이 건강한 수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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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사대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 중 ‘혼인식’ 부분. 신랑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부집에 도착한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김홍도가 사대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 중 ‘혼인식’ 부분. 신랑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부집에 도착한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간통혐의만으로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부당하게 사적 징벌을 가한 남성에게 관용을 베푸는 일을 반복한 영·정조대에는 정절 이데올로기에 대한 병적 집착이 있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체제 위기에 봉착한 지배계급이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들의 위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성적 규제를 강화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성리학 논리를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다. 여성에 대한 강한 규제가 성리학에서 유래했다고 보기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는 선입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여성사를 연구해 온 저자의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 성폭행의 실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출신 성분, 범죄 내용, 처벌 양상 등을 신분별로 전기와 후기를 나눠 상세하게 분석했다.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분석대상으로 ‘승정원일기’, ‘일성록’ 및 재판기록인 ‘추관지’, ‘심리록’, ‘흠흠신서’ 등을 보완자료로 삼아 113건의 사건을 상세하게 분석해 조선시대 강간 범죄의 양상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성동본혼 금제, 호주제, 간통범죄, 강간범죄 등의 법규가 해방 이후 어떻게 변화했고 조선시대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교차해 살펴보면서 가부장권이나 여성인권이 시기별로 어떻게 강화되고 보장되었는지 그 역사를 살필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의 모습이 현재 우리와 겹쳐지는 부분도 있는데 ‘여성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강간은 있을 수 없다’는 논지가 그렇다. 현행 형법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인식의 단초가 보인다.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성적 이력이나 평소 행실을 문제 삼는 것도 여성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호 이익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런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강제한 것은 이미 강간이니, 그 후의 일들은 말할 것이 못 된다”(‘성호사설’ 권 16, 307~308쪽). 2만 2,0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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