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앞서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는 보험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은 이미 예견된 변수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보험사 신종자본증권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가용자본 인정비율과 달러 프리미엄 등에 이점을 느껴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했으나 최근 KDB생명이 예상보다 높은 금리로 발행하며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보험사들은 급하게 국내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 발행으로 자본확충 방식을 바꾸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화재(000540)가 최근 2억달러 규모로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려 했으나 모집금액이 4,000만달러에 그치자 발행 자체를 중단했다. 대신 흥국화재는 국내 후순위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한화손해보험(000370)은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에 ‘A(안정적)’등급을, 무디스에 ‘A2(안정적)’ 등급을 획득하며 발행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 증가 등 해외 발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1,900억원의 국내 신종자본증권을 사모로 발행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이 신종자본증권의 발행금리는 연 5.6% 수준이다.
교보생명과 현대해상도 상황이 비슷하다. 교보생명은 10억달러를, 현대해상은 5억~7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준비했으나 잠정 연기한 상태다. 동양생명(082640)도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하다 후순위채 발행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2021년 IFRS17 도입을 앞두고 철저하게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을 관리하고 있다. IFRS17은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방식이라 보험사들은 회계상 부채규모가 늘어 자본 적정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1·4분기 말 흥국화재의 RBC는 157%, 한화손보는 174%, KDB생명은 155% 수준으로 금감원 권고비율인 150%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여기에 K-ICS까지 도입되면 리스크가 세분화돼 추가 자본확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 형태로 발행됨에도 불구하고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선호한다. 잔존만기 5년부터 매년 20%씩 자본인정비율이 축소되는 후순위채와는 다르게 신종자본증권은 전량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신종자본증권은 상대적으로 낮은 변제순위로 금리가 후순위채보다 높다. 통상적으로 해외 신종자본증권 금리는 달러화의 경우 5년 만기 달러국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합산한 금리로 결정된다. 최근 미국 국채 5년물 금리가 2.7%대로 올 초 대비 0.5% 상승했고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 발행 시장 진출이 늘어나며 가산금리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지난 5월 KDB생명이 2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표면이율 7.5%에 발행한 것이 국내 보험사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에는 가산금리가 3~4% 수준에서 형성됐으나 KDB생명이 무리하게 금리를 높인 탓에 최근 기대금리가 9%대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KDB생명은 3·4분기에 2,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국내에서 발행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KDB생명이 높은 금리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후 기획재정부가 이에 대한 리스크를 부정적으로 평가해 보험사들의 발행을 제지하고 있다”며 “최근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며 보험사들은 자본조달 비용 부담이 늘어나자 다소 합리적인 수준인 후순위채권이나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진·임세원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