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옥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신남방경제특별위원회’가 신설된다. 이 밖에도 경제·사회 등 각 분야의 위원회 신설 구상이 국정계획에 잡혀 있어 조직만 비대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사게 됐다.
25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언론브리핑을 통해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남방경제특위가 만들어진다”며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그는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성격으로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인적교류 등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신남방경제특위는 앞서 지난해 출범한 신북방경제위원회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해외 신시장 개척 및 외교관계 강화 차원에서 만들어지게 됐다. 기존에 신설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산하에 신남방경제특위를 두는 ‘위원회 속 위원회’ 형식을 취하게 됐다. 이에 대해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위원회가 난립한다는 비판을 최소화하려고 위원회 속 위원회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말에는 정책기획위 밑에 소득주도성장특위가 만들어졌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위원장으로 갔다. 현재 홍 위원장은 비상근직이지만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책기획위에 마련된 본인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 위원회는 총 11개가 된다. 특히 정책기획위는 산하에 재정개혁특별위원회 등 3개의 위원회를 아우르는 거대 위원회가 됐다. 여기에 헌법에 명시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가동되고 있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지역발전위원회·지방자치발전위원회·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을 합치면 현 정부의 위원회 수는 더 많아진다. 이 밖에 성평등위원회, 농어업 및 농어촌특별위원회, 시민공익위원회,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 등의 신설도 추진되고 있다.
위원회 속 위원회라고 해도 새로운 조직이 생기면 유관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은 해당 위원회에 수시로 보고하거나 정책 제안을 받아야 한다. 정책의 ‘사공’이 많아지는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위원회는 정규적인 행정조직보다 유연하게 일할 수 있고 대외 여론 소통이나 정책연구 등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규모나 역할이 과도하면 정책 결정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최악의 경우 국정혼선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 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이미 정부 부처에 담당 조직이 있는 것이 많다. 새롭게 만들어질 신남방경제특위는 기획재정부 내 대외경제국이 있고 외교부에서도 남아시아태평양국이 담당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다루는 소득주도성장특위는 각 경제부처와 역할이 중첩되고 싱크탱크로서의 역할도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 겹친다.
결국 정부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각 위원회에는 수십억원의 예산이 편성되는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위원회에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위원장이 인사 검증은 헐겁게 받는데 경우에 따라서 장관보다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있다. 위원회의 위원장은 청와대로부터 인사 검증을 받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꾸 위원회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분석이 있지만 관료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엄연히 정부 부처가 있고 사안에 따라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해도 되지만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에 학계 출신 인사를 앉히는 것은 결국 관료를 못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정책을 추진하는 부처가 엄연히 있는데 위원회를 또 만들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이 참 많은데 불필요한 일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도 “위원회를 계속 신설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과물을 만드는 것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