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진통 앓는 규제완화] 규제개혁 시작도 전에...은산분리 완화·원격의료 '예고된 전쟁'

당국·여당 '규제 유지'서 '은산분리 완화'로 선회했지만

시민단체·금융노조 "文공약 위반"...극심한 대립 불가피

원격의료도 당·靑 모두 반대에 주무부처 장관 입장 번복

"지지층 목소리만 의식하다 혁신기회 또 놓칠수도" 지적

김동연(오른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김동연(오른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한바탕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정부의 한 핵심 고위관계자는 26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 규제 완화 이슈를 두고 향후 판세를 이같이 예측했다. 그간 규제 유지를 고집해왔던 금융감독원과 여당이 완화로 기조를 선회하면서 강력하게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의 큰 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금산분리와 은산분리는 노동이 넘치고 자본이 부족하던 시기에 만든 규제인데 지금 상황은 반대”라며 “기업들의 자본이 늘어나 은행에 관심이 없는데도 과거의 기준을 고수하는 것은 재고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규제 완화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인터넷은행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금융산업을 혁신성장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입장이 모아지고 있다. 그간 규제 완화 반대 입장이 분명했던 윤석헌 금감원장도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현시점에서 인터넷은행 활성화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특례법을 통한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국회 통과 주요 법안으로 ‘인터넷은행 관련 특례법’을 첫 번째로 꼽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관련 특례법을 통과시키는 데 야당과 전격 합의했다.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도 조만간 제시할 규제혁신 리스트의 1순위로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를 꼽고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은산분리라는 큰 덩어리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에는 의지가 강하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은산분리 완화는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과 거리가 있고 인터넷은행에 한하면 개혁 의지가 약하다는 이야기도 있어 고민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정부가 지레 겁을 먹은 분위기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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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이번 정부 들어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시민단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통해 ‘금산분리 원칙’을 확고히 천명한 데 따른 반작용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금융위는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핑계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대놓고 추진 중”이라며 “이는 명백한 대선 공약 위반이고 케이뱅크의 불충분한 자본 확충 문제를 자초한 금융위가 자신들의 과오를 덮으려는 몸짓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역시 “은산분리는 한국 금융정책의 금과옥조”라며 “어떤 이유로도 은산분리 완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극명한 입장 차이 탓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업들이 은행의 돈을 마구 가져다 쓸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해놓으면 규제를 완화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실제로 국회 계류 법안 5개 중 4개가 산업자본이 은행의 자금을 빼돌릴 수 없도록 신용공여를 아예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행법보다 강화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대표 규제로 꼽히는 원격의료 허용을 두고서도 말이 많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문 대통령 공약과 달리 의료인-환자 간의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가 닷새 만에 철회하면서다. 박 장관은 지난 19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원격의료의 물결을 타지 않으면 세계 최정상 수준의 한국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세계 톱 지위를 지키기 힘들 것”이라며 “초기에는 의사가 환자와 대면 진료를 하고 이후 정기적인 관리는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당·청에서는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까지 나왔다고 한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사태 수습에 공을 들였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10년 넘게 원격의료에 반대해온데다 문 대통령 역시 의료인-의료인 사이에서만 원격의료를 한정적으로 허용하겠다고 공약해온 탓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도 “의료민영화를 재추진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 장관은 24일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오해를 불렀다”고 번복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 개혁 전쟁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결과를 얻어내려 한다면 또다시 시작도 하기 전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힘들더라도 이번 규제 혁신을 계기로 시민단체가 정부 위에 군림한다는 이미지를 지우고 부진한 경제 회복을 위해 혁신성장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통령 공약은 경제 상황에 따라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것이지 성경 말씀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걸러서 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부작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해놓는다면 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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