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전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53·불구속)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한 가운데 김지은씨 외에 또 다른 피해자의 증언이 눈길을 끈다.
2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안희정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에 징역 4년과 성폭력치료강의 수강이수 명령과 신상공개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던 안 전 지사가 헌신적으로 일한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한 중대범죄다”며 “안 전 지사는 막강한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지녔고 김지은씨는 불안정한 위치였다. (김씨가) 을의 위치에 있는 점을 악용해 업무지시를 가장해 불러들이거나 업무상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기회로 범행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위력으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너뜨리면 범죄다. 위력은 사회·정치·경제적 권세일 수도 있다”며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이 사건과 같은 권력형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안 전 지사는 반성의 빛이 전혀 없고 계속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다”며 “증인을 통한 허위 주장이나 김씨의 행실을 문제 삼아 또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날 공개 진술에 나선 김지은씨는 “(성폭행 공개 이후) 저는 통조림 속 음식처럼 죽어지냈다”며 “나만 사라진다면, 내 가족과 지인들의 괴로움을 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강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씁쓸한 심경을 밝혔다.
김씨가 공개적으로 피해를 밝힌 것은 지난 3월 5일 JTBC ‘뉴스룸’ 인터뷰 이후 처음이다.
김씨는 “안희정 전 지사는 누구보다 자신의 권력을 잘 알았다.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의 성을 착취하고 영혼까지 파괴했다”라고 폭로했다.
지난 3월 미투 폭로 이후 받았던 고통에 대해 “고소장을 낸 뒤 통조림 속 음식처럼 죽어 있는 기분이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려야 했고, 기억을 유지해야 했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김씨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피고인과 그를 위해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에 괴로웠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입 닫으면 제자리를 찾지 않을까, 나 하나만 사라진다면 되지 않을까,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며 “자책도 후회도 원망도 했다. 밤에 한강 가서 뛰어내리려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또 “내가 유일한 증거인데 내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날뛰겠구나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길이라 생각해 생존하려 부단히 애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피해자는 나만이 아니라 여럿 있다. 참고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제일 앞줄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피고인에게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한 행동은 범죄다. 잘못된 것이고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김씨를 제외한 또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씨 말고 다른 피해 여성들은 “안희정이 좁은 공간에서 갑작스런 스킨십을 했다”, “옆자리에 앉힌 후 허벅지 안 쪽을 만졌다”라고 안 전 지사의 만행을 폭로해 큰 충격을 줬다.
/권준영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