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사람-판화가 이철수] "시대 아픔 담고 대중과 호흡...이념 넘어 생명·평화 새기죠"

사회변혁 위한 도구로 미술 선택

1980년대 민중판화 대표 작가로

맞짱뜨기식 이념 투쟁 수명 다해

자연과 함께 하며 삶의 본질 궁리

생명의 가치에 눈뜨며 그림도 변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느낄수 있는

일상 속 지혜 담은 그림 그리고 싶어




충북 제천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 아래에 자리 잡은 판화가 이철수(64)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등에 분무기를 멘 채였다. 고추밭에 농약을 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퇴치할 대상은 개미였다. 고추 뿌리에 개미집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개미는 고추에 갈 수분과 영양분을 뺏는다. 고춧잎에는 진드기가 시커멓게 달라붙어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 농약을 사서 치면 이 정도는 아닐 텐데 그는 고집스레 살충력이 다소 떨어지는 친환경 농약을 직접 만들어 쓴다. 집 앞에 있는 1,000평 규모의 무논에는 우렁이가 가득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면 소출이 적지 않냐고 하자 그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라며 “조금 성가시지만 이제 적응이 돼 할 만하다”고 미소 지었다.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였던 이철수는 지난 1987년 서울 생활을 접고 제천으로 내려왔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목판에 그림과 글을 새긴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작품실에서 마주 앉으니 그는 어느새 농사꾼에서 판화가로 돌아와 있었다.

“직접 내 손으로 땀 흘려 지어 먹으며 ‘푸드 마일리지 제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생명들과 아침저녁으로 만나면서 가상으로 대화를 나눠요. 내가 어떤 다른 자리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소소한 기쁨 같은 것, 작고 일상적이고 흔한 것이지만 그 속에 있을 때 내 존재가 가장 합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참 좋습니다. 내 경험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누리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소중한 생명으로의 ‘나’를 느낄 수 없도록 만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요.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 힘든 일이지요.”



농사짓고 작품활동을 하느라 짬을 낼 여유가 없어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올 2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 오랫동안 후원위원장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도 전면에 나서는 것은 꺼렸지만 한 달에 두어 번 회의에 참석하면 된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덜컥 맡고 말았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서울에서 행사 참석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아 돌아서던 아내 이여경씨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서울 올라갈 일이 생긴다”며 짐짓 못마땅해하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대표 제의를 승낙한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이 들면서 생명과 평화, 환경과 반전이라는 주제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내 삶과 작품에 그러한 가치들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내 그림을 매개로 많은 이가 일상에서 잠시 눈과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달리해보는 짧은 시간을 누릴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변화의 물결이 굽이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올해 12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우리 지역 미세먼지 줄이기’와 ‘노후 원전 조기 폐쇄’ ‘4대강 보 수문 활짝 열자’ 등 3대 캠페인을 중점사업으로 정했다. 작가는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민단체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그는 “노후 원전도 천천히 중단하고 점진적으로 원전을 없애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 대표로서가 아니라 작품활동으로 오랫동안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그가 탈원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경제성이나 활성화 측면에서 한계가 많다는 우려를 전하자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하게 ‘대안적 삶’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도 이제 대안적 삶을 전면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친환경에너지의 비중을 늘려가는 독일 사회가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 그런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젊은 시절 문학청년이었던 이철수는 ‘사상계’ 등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민중문학이 절정기를 맞은 1980년대에 미술도 사회 변혁에 의미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판화를 선택했다. 당시 시위 현장에는 이철수의 판화가 늘 등장했다. 집회 현장의 걸개그림은 물론이고 각종 운동가요집이나 책자에도 그의 작품이 실렸다.


오윤(1946~1986)과 함께 1980년대 민중판화를 대표하는 작가였던 그는 30대 중반 돌연 낙향을 택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사회 변혁의 꿈을 포기한 것도 민중미술의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에 변화가 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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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에 몸을 오롯이 맡겼다. 삶의 본질을 궁리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연스레 생명과 평화의 가치에 눈을 떴다. 그림의 소재와 주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불교 경전과 간화선(看話禪)을 모은 공안집(公案集)을 읽으면서 마음공부에 열중했다. 자연스레 선(禪)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졌다. 그러자 민중미술 진영에서 “이철수가 변절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에도 출품하지 않았더니 “운동을 그만하겠다는 거냐”는 힐난을 들었다.

“옛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작품 중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레닌을 만나면 레닌을 죽여라’라는 글귀가 적힌 것이 있습니다.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했지요. 1990년대에 그림이 많이 바뀌면서도 나는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진보적인 가치가 설 자리와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너무 비좁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기를 지나왔다고나 할까요.”

거칠고 폭압적인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맞짱을 뜨는’ 방식은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지금도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의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작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작성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지만 특별히 밝히지는 않았다.

“정치권력이 준동해 진보적인 의식과 인자를 박멸하겠다는 것을 구체화한 것이 블랙리스트죠.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깨끗이 잊었어요.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화하고 있잖습니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죠.”



그는 5년에 한 번꼴로 국내 전시회를 연다. 2011년 30주년 기념 전시회 ‘새는 온몸으로 난다’를 가진 데 이어 2015년에는 100주년을 맞은 원불교의 경전 ‘대종경’을 재해석해 200여점으로 표현한 신작 판화전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를 전국 6곳에서 열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해 수시로 전시회가 열린다.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이탈리아 로마를 순회하는 전시회가 진행된다. 그는 농사일에 바빠 부다페스트와 베를린만 다녀왔다.

“분명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그림인데 의외로 전달력과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를 관람객들이 해요. 개성적이고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예술 언어라는 평가와 함께요. 특히 심리치료에 내 그림을 활용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 마음이 다니는 길은 빤합니다. 내가 그리는 길과 사람들의 마음이 다니는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앞으로도 현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마음공부가 쉽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삶 속에서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 지혜를 담아내려고 해요. ‘대종경’을 하느라 밀쳐둔 ‘무문관(無門關)’을 바탕으로 한 연작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여러 화두를 가지고 마음공부가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서로 묻는 공안집이지요. 밑그림은 어느 정도 그려놓았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을걷이해놓고 시작하려고요.”
/제천=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54년 서울 △1981년 첫 개인전 ‘이철수 판화전’ △1989년 함부르크대 초청 독일 순회전 ‘민중 쿤스트 인 코리아(Min-jung Kunst in Korea)’ △1993년 학고재 초대전 ‘산벚나무 꽃피었네’ △2000년 학고재 초대전 ‘이렇게 좋은 날’ △2003년 시애틀 데이비슨 갤러리 초대전 ‘비주얼 포에트리(Visual Poetry)’ △2005년 가나아트 초대전 ‘작은 것들’ △2011년 이철수 목판화 30년 기념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 △2015년 전국 순회전 ‘이철수 대종경 판화전: 네가 봄꽃 소식 해라’ △2017~2018년 유럽 순회전(부다페스트·바르셀로나·베를린·파리·브뤼셀·로마) △판화집 ‘작은 선물’ ‘생명의 노래’ ‘마음에 새긴 마음’ ‘사는 동안 꽃처럼’ ‘웃는 마음’ △판화산문집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 ‘소리 하나’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엽서모음집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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