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위해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관련 위원회가 국민연금 제도발전방안을 내놓으면서 노후소득보장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안과 재정 건전성 확보에 중점을 둔 방안 등 두 가지 상반된 방안을 제시해 여론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13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등에 따르면 두 위원회는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오는 17일 열리는 공청회에서 공개한다.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국민연금 장기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제도개선, 기금운용 발전방안 등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는 재정계산을 5년마다 진행한다. 이미 2003년 1차, 2008년 2차, 2013년 3차에 이어, 국민연금 30주년인 올해 4차 재정계산을 마쳤다.
제도발전위원회는 기금이 3차 때보다 3년 이른 2057년에 고갈될 것이란 추계결과를 바탕으로 2088년까지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금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국민연금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강화’에 각각 방점을 찍은 두 가지 발전방안을 언급했다.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수준은 이른바 ‘소득대체율’ 지표로 알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생애 평균소득과 대비한 국민연금 수령액의 비중을 말한다. 연금급여율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소득대체율 50%는 국민연금 가입기간(40년 기준) 월 평균소득이 100만원이라면 은퇴 후 월 50만원을 연금으로 받는다는 얘기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때 가입기간 40년 기준 70%였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기금소진 논란에 외환위기에 따른 재정 불안론이 퍼지면서 1997년 1차 연금개편에서 60%로 떨어졌다. 이어 2008년 2차 연금개편에서 또다시 60%에서 매년 0.5%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하락하게 돼 있다. 월평균 100만원을 벌던 국민연금 가입자가 40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냈다면, 애초 연금 수급연령인 65세부터 월평균 70만원을 받기로 했던 게 60만원에서 다시 40만원으로 낮아지는걸 뜻한다.
2018년 현재 소득대체율은 45%이다. 이마저도 성실하게 60세까지 일하면서 4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했을 때의 일이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질’ 소득대체율은 20% 안팎으로 40년 가입기준의 ‘명목’ 소득대체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연금 신규수급자의 평균가입 기간은 약 17년에 불과하고, 실질소득대체율은 약 24%에 머물렀다. 실질소득대체율 24%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52만3,000원(2017년 평균소득월액 218만원×24%)에 그친다. 이는 50대 이상 중고령자들이 최소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는 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하지 못할 정도로 연금액이 턱없이 적다 보니 ‘용돈연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제도발전위원회는 든든한 노후버팀목은 고사하고 최소생활비조차 보장 못 하는 국민연금의 빈약한 노후소득 보장 수준을 높이고자 먼저 올해 45%인 소득대체율을 더는 낮추지 않고 그대로 고정하되,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내년에 당장 1.8%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일명 ‘소득대체율 인상안’이다. 이렇게 되면 연금급여액이 올라가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기능이 강화된다.
두 번째 방안은 ‘소득대체율 유지안’으로 현행 국민연금법 규정대로 소득대체율을 해마다 0.5%포인트씩 낮춰서 2028년 40%로 내려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88년까지 기금소진을 막고자 2033년(또는 2028년)까지 1단계 조치로 보험료를 13%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나아가 이런 보험료율 인상만으로 재정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기에 2단계 조치로 2038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65세(2033년)에서 2048년까지 68세로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재정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의 논란은 국민연금 개편논의 때마다 있어왔다. 하지만 대체로 ‘기금고갈론’과 ‘재정안정론’ 등에 밀려 ‘소득보장강화론’은 힘을 얻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논의 때마다 ‘연금기금 고갈론’이 압도하며 다른 쟁점들을 집어삼켰다. 연금기금이 바닥나고 국민연금 제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국민의 노후 소득보장이란 연금제도 본래의 취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셈이다. 개혁 논의 방향은 연금제도의 지속적 존속을 위해 노후에 받는 수령액을 깎든지, 수급 시기를 뒤로 늦추는 등 국민연금 노후보장기능을 약화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소득대체율은 1, 2차 연금개혁을 거치며 70%에서 40%로 고꾸라졌다. 연금수급 연령도 60세에서 단계적으로 65세로 늦춰졌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안도 나오긴 했지만,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저항과 거부감을 의식해 정치권에서 추진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올해 30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제도가 성숙하면서 급격한 고령화와 맞물려 수급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인구변동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점차 줄어들지만, 수급자는 꾸준히 증가해 2060년에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가입자를 앞지르게 된다. 연금선진국처럼 국민연금에 의존해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국민연금이 무르익으면서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피부로 절실하게 느끼는 노인이 증가하면 재정안정론에 기울었던 사회 분위기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커진다. 보건복지부는 제도발전위원회의 국민연금 제도개선방안을 기초로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정부안)을 만들어 국무회의를 거쳐 문재인 대통령 승인을 받고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앞으로 국회 특별위원회나 정부와 연금가입자 대표, 공익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 등이 꾸려지면 국민연금 발전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노후소득보장 강화와 재정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