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장전했다. 총알 대신 물감이다. 순백의 석고 비너스상을 겨눴다. 젖가슴에서 새빨간 물감이 흘렀다. 눈 아래에서도 붉은색이 터졌다. 심장에서는 썩은 풀색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20세기 여성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니키 드 생팔(1930~2002)이 1961년 처음 선보인 일명 ‘사격회화’다. 그녀에게 사격행위를 통한 예술은 일종의 치유였다.
“나는 내 자신의 폭력성과 시대의 폭력성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나의 폭력성을 씀으로써 나는 더 이상 내 안의 짐 같던 그 폭력성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프랑스 귀족 집안의 금융자본가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생팔은 어려서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겪었고 가부장적인 남자들에게 시달렸다. 젊은 시절 인형 같은 외모로 모델활동을 하다 21살에 첫 아이를 낳은 후엔 못생겨질까 두려워하다 신경쇠약을 겪었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 그의 돌파구가 바로 예술이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풍만한 가슴과 둔부를 가진 화려한 색채의 조각상으로 유명한 니키 드 생팔의 대규모 회고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와 1980년대부터 교류했던 요코 마즈다 시즈에 니키미술관 창립자 컬렉션의 대표작 127점이 선보인 자리다.
‘사격회화’로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자존감을 되찾은 생팔은 1960년대 중반부터 과장될 정도로 가슴이 부풀고 엉덩이가 큰 여성상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작이 ‘나나’. 불어로 ‘어린 여자’를 뜻하는 나나는 당시 파리의 고급 창녀를 가리키는 말이며 성적 욕망의 대상을 칭하는 이름이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나나들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조신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지만 자유롭고 통쾌하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족쇄를 풀고, 남성 중심의 미의식을 내팽개쳐 여성 존재 자체의 위대함과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깡마른 금발 백인이었던 그녀가 만든 ‘검은 나나’는 특히 흑인 인종차별 시위를 지지하는 뜻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를 만나 결혼하면서 인간애의 회복으로, 더 과감하게 전개된다. 이들의 협업 작품인 파리 퐁피두센터 옆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자유분방한 형상과 화려한 색채, 파격적 설치로 명소가 됐다. 둘의 이질성은 전례없는 독특함을 낳았고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이들이 1978년 시작해 20년 걸려 완성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조각공원 ‘타로공원’은 “인간적이고 유쾌한 건축”을 꿈꾼 생팔의 역작이다.
생팔이 이룬 유쾌한 환상세계는 약자와 소수자에게는 힘이 되고 관객에게는 ‘총 맞은 것 같은’ 감동을 전한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