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기고]'벤처 코리아'의 꿈

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

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



지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IMF 경제위기를 벗어나(1999년 공식 졸업) 정보기술(IT) 벤처 붐이 일었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2년 차 과정이던 필자는 교수님 몰래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회사를 창업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투자사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거듭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돌아와 풀이 죽기도 했다. 그래도 보완해 계속 투자유치를 시도했고 결국 한 창투사에서 당시로는 큰돈인 5억원을 투자받는다. 우리는 번지르르한 오피스로 옮기는 등 신이 났다. 그때 많이 들었던 단어는 ‘선점우위 효과(first mover advantage)’였다. 막 인터넷 세상이 펼쳐지는 시점에서 처음 뛰어드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필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구닥다리 굴뚝산업’ 같은 의료에 얽매여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레지던트를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벤처는 친구들에게 맡긴 채 전문의 과정까지 마친 후 미국 경영대 MBA에 진학했다.

얼마 후 IT 거품이 꺼지고 벤처 붐은 차갑게 식어갔다. 당시 업계에서는 투자자나 피투자회사나 모럴해저드가 많았다. 심지어 사채업자 등이 창투사를 만들고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를 유치한 경영자들은 남의 돈이 무서운 줄 모르고 회사를 운영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만일 그때 내가 벤처 사업을 했더라면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마시지 말아야 할 독배를 마셨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2015년 봄 무렵 의대 친구이자 임상 대신 기초의학을 공부한 박한수 박사를 만났다. 못 본 사이에 하버드에서 박사후과정 경력을 쌓는 등 많은 업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신산업을 소개했고 공동 창업을 제안했다. 우리는 같이 사업계획서를 쓰고 창투사들을 찾아다녔다. 드디어 창업한 그해 든든한 투자자들을 만나 현재까지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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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0년대 초반이 아닌 지금 사업을 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투자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난 창투사의 심사역들은 열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창업자의 고독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가 돼줬다.

둘째, 정부의 벤처 지원이 많이 좋아졌다. 큰 벤처 지원 펀드를 조성하기도 하고 기술창업지원(TIPS)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중소벤처기업부나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예전의 선입견과 달리 ‘민(民) 위에 군림하는 관(官)’이라기보다 기업의 고충을 듣고 개선하는 정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서비스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셋째, 바이오 산업의 기반이 제법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임상연구 경험이 축적돼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한미약품이나 셀트리온 등 업계에서 혁신 신약을 개발하고 큼직큼직한 라이선스 딜을 진행한 경험이 쌓였다. 자연스레 전문가가 업계에 퍼져나가 그 경험을 벤처사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벤처 생태계가 모범적으로 형성된 미국에서는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등이 창업해 1세대 만에 성공신화를 썼다. 그런데 이런 역동적인 벤처 환경을 유럽도, 일본도 못 만든다. 하지만 필자는 10년 안에 한국이 미국같이 벤처 성공신화가 많이 나오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본다. 6월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학회인 ‘BIO-US’에 다녀왔다. 당시 3만여명의 참가자는 미국·캐나다·중국·한국 순인 것처럼 한국의 바이오 벤처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하지만 최근 변화하는 벤처 시스템의 역동성을 볼 때 ‘벤처 한국’의 꿈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믿는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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