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에 대한 불신임(탄핵)안이 16일 가결됐다. 조계종 역사상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계종의 입법부인 중앙종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안에 대한 비밀투표를 진행했다. 중앙종회 재적 의원 75명 전원이 출석했고 56명의 의원이 설정 스님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14명, 기권은 1명, 무효는 4표였다. 불신임안은 오는 22일로 예정된 원로회의에서 재적 23명 중 과반인 12명 이상이 찬성할 시 인용된다. 원로회의 역시 설정 스님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만큼 불신임안은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설정 스님이 퇴진하면 60일 이내에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불신임안 가결의 배경에는 조계종 최대 실력자인 자승 전 총무원장과 설정 스님 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정 스님은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지원으로 당선됐지만 설정 스님의 은처자 의혹을 제기한 MBC ‘PD수첩’ 방영 이후 설조 스님이 41일간의 단식투쟁을 이어가며 기류가 달라졌다. 이후 자승 전 총무원장은 현 체제에 대해 부담감을 느껴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퇴진시킨 뒤 자신의 영향력 내에 있는 새로운 총무원장 선출을 통한 현 상황 타개를 시도해왔으며 현재 종단 내 계파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송월주 스님과 교류를 이어가며 차기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反)자승 세력인 불교개혁행동 측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설정 스님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설정 스님을 선출한 종앙종회 해산을 동시에 요구했다. 개혁행동은 23일 전국승려대회를 열어 원로회의에 중앙종회 해산 및 비대위 구성을 요구할 예정이다. 전국승려대회는 종법상 구속력은 없지만 초법적 기구의 성격도 갖고 있다. 1994년 불교개혁 역시 전국승려대회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 원로회의 역시 전국승려대회 개최에 부담감을 느끼고 당초 예정됐던 22일에서 더 앞당겨 기습적으로 개최할 가능성도 높다. 중앙종회는 “종헌종법을 무시하는 대규모 집회는 혼란만 가중하는 극심한 해종행위”라며 승려대회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만 조계종 총무원장직은 원로회의에서 불신임안이 인용될 때까지 권한이 정지되지 않아 설정 스님의 추후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설정 스님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 안건 처리를 앞두고 “종헌종법에 근거한다면 불신임안을 다룰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발했다. 또한 중앙종회 임시회 개원 직전 총무부장과 기획실장에 진우 스님과 학암 스님을 임명하면서 “총무원장 소임을 맡고 개혁을 천명한 이상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진행하겠다”며 “(불신임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야 할 길을 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