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뒷북경제] 국민연금 보험료 올린다는데...얼마나, 어떻게?

17일 '국민연금 제도개선 공청회'

20년째 9%인 보험료 11~13.5%로

월급 300만원 직장인 年36만원 ↑

기금운용 개선·다층연금체계 구축

근본적·장기적 개편 논의는 부족

국민연금 개편의 밑그림이 정식으로 공개됐습니다. 저출산·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소진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는 연금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해 20년째 9%로 묶여있는 보험료율을 11~13.5%로 올리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용돈 연금’이란 오명을 벗고자 타가는 연금액을 지난 번 개편 이전 수준으로 다시 높이자는 제안도 함께 나왔습니다.

정치적 부담에 번번이 미뤄왔던 보험료 인상 논의는 더 미룰 수 없는 수준이 된 만큼 정부 안팎에서도 ‘또 피할 수는 없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해 겹겹이 쌓인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연금 재정 확충의 또 다른 핵심축인 기금운용의 경쟁력·독립성 확보, 다른 연금체계와의 연계 등은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민연금 보험료 왜, 얼마나 오르고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요.







보건복지부는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청회를 열고 정부 자문 역할인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과 제도개선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향후 70년 동안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도록 돼 있습니다. 올해가 네 번째입니다.



이번 재정계산 결과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2028년까지)인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42년 적자로 돌아선 뒤 2057년 소진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2013년 3차 전망 때보다 적자전환(2044년)은 2년, 기금소진 시점(2060년)은 3년 앞당겨졌습니다. 위원회는 이런 재정불안정의 원인으로 “평균수명 연장, 출산율 하락 등 주요 인구구조 변화와 여전히 낮은 보험료율”을 꼽으면서 “지난 10년 간 급여수준만 인하하고 추가적인 재정 안정화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돈을 낼 사람은 적어지고 받아갈 사람은 많아지는데 보험료율은 1998년 이래 9%에 묶여있어 보험료 인상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현 상태를 유지할 수록 미래에 보험료율을 한꺼번에 대폭 올려야 해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입니다.

위원회가 제시한 재정 안정화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가)안은 현재 40%까지 떨어지도록 돼 있는 소득대체율(연금액이 생애 평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45%로 높이되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당장 내년에 11%로 올리는 것입니다. 이후 2034년부터 보험료율을 12.31%로 추가 인상하고, 5년마다 이뤄지는 재정계산을 통해 적정 보험료율로 자동 조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나)안은 2028년까지 40%로 점차 떨어지게 돼 있는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 10년에 걸쳐 13.5%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입니다. 이후 2030년부터는 보험료율을 올리는 대신 현재 65세인 연금 타는 나이를 차차 67세로 높이거나, 연금급여액을 나이가 많아질수록 깎는 등의 지출 구조조정을 제안했습니다.



두 개 안 모두 보험료 인상을 권고하고 있어서 보험료 인상 자체는 불가피해보입니다. (가)안대로 당장 보험료율이 11%로 오르면 한 달 월급이 300만원인 직장인은 보험료가 월 27만원에서 33만원으로 오르게 된다. 직장가입자는 회사가 보험료 절반을 내주기 때문에 본인이 매달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3만원입니다. 1년에 36만원을 더 내야 하는 셈입니다. 자영업자나 은퇴자 등 보험료 100%를 본인이 다 내는 지역가입자는 1년에 72만원을 더 내야 합니다. 그 대신 소득대체율이 45%로 고정되기 때문에 만65세부터 돌려받는 연금액도 10% 가량 늘어납니다.


(나)안대로 10년 간 보험료가 4.5%포인트 오를 경우는 어떨까요. 매년 0.45%포인트씩 오른다고 가정할 때 월소득 300만원인 직장인의 보험료는 월 27만원에서 내년에 28만3,500원으로 오릅니다. 본인부담금은 매달 6,750원, 1년에 8만1,000원 늘어나는 셈입니다. 이렇게 매년 단계적으로 올라 10년 뒤에는 월 보험료가 40만5,000원까지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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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더 오래 내고 늦게 받는’ 개편안으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수급연령 연장은 (나)안에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선택지로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 개편안에는 포함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앞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아직 65세까지 연장도 안 된 상태인데 68세를 거론하는 것 자체는 전혀 사실과 먼 이야기”라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위원회는 보험료 인상 외에도 일하는 노인과 장애인·군인 등 사각지대에 놓인 가입자의 수급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를 내야 하는 나이를 현행 만60세 미만에서 만65세 미만으로 높이는 방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앞서 ‘은퇴 후 소득도 없는데 폐지 주워서 보험료 내라는 거냐’는 불만을 불러일으켰던 내용입니다. 소득이 없으면 납부예외자로 신청해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는 점에서 저 말 자체는 오해입니다. 재정계산위 지원단장인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은 “현재 65세인 수급연령과 가입연령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며 “현재 사업주의 보험료 보조를 못 받는 60~64세 사업장 근로자만 200만명 전후여서 이들을 가입자로 포괄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60세 넘어서까지 일하면서 보험료를 내는 직장인들 많은데 국민연금 가입상한연령이 만60세 이하로 제한돼 있어서 이들은 회사가 보험료 절반을 내주는 혜택을 못 누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가입상한연령이 만65세로 높아지면 이런 직장인들에게는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보험료를 100% 본인이 내는 지역가입자나 고령 근로자의 보험료 절반을 내줘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무거워집니다.

이밖에 유족·장애연금은 가입기간에 따라 본래 연금액의 40~ 60%를 차등 지급하는 규정을 일률적으로 60% 지급으로 올리는 안이 제시됐습니다. 가입기간에 상관없이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이혼한 배우자에게 지급되는 분할연금에 대해선 자격 요건인 최저 혼인 기간을 현재 5년에서 1년으로 완화하자고 했습니다.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제도도 폐지가 검토됩니다. 지금은 매달 받는 국민연금액이 기초연금의 1.5배를 넘으면 기초연금을 깎아서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468만원인 보험료 부과소득 상한선을 높이는 방안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이 올라가 전체 연금액도 올라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각지대를 좁히고 더 많이 주자’는 제안은 많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추가 재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선 ‘보험료 인상’ 말고는 논의가 부족합니다. 대표적으로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사실상 빠졌다는 점입니다.

이번 재정계산에서 기금소진시점을 앞당긴 것은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 경제성장률 둔화 등 ‘삼중고’입니다. 위원회는 이번 계산에서 경제성장률·합계출산율 등 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는데 그중에서도 기금투자수익률이 눈에 띕니다. 올해 재정계산에서 2018~2020년 동안 국민연금 기금투자수익률 전망치는 평균 4.9%입니다. 5년 전 전망치 7.2%보다 2.3%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전망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무너진 기금투자 실적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2013~2016년 연 4~5%대였던 수익률은 지난해 7.26%를 기록한 뒤 올해 들어 5월까지 0.49%로 추락했습니다.

재정추계위 분석에 따르면 기금투자수익률을 연 0.1%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소진 시점은 2058년으로 기본 시나리오보다 1년 늦춰집니다. 경제활동참가율이 연 0.3%포인트씩 올라도 이룰 수 없는 성과입니다. 전문가들이 “기금투자수익률을 1~2%포인트 올리면 보험료 인상 고민은 안 해도 될 정도로 재정확충에 기여할 수 있다”며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복귀, 기금운용 독립성 확보,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해 실력 있는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는 것 등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국민이 맡긴 노후자금을 정부가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국민들도 ‘부담을 더 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 재정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기금투자수익률도 제대로 못 내고 돈만 더 내라고 하면 누가 따르겠느냐”며 “공단과 기금운용본부가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자율적으로 주도·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게 정도(正道)”라고 말합니다.

/자료=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자료=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노후소득보장 수단에는 국민연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초연금, 퇴직연금, 사적연금 등 다양한 연금체계가 있습니다. 층층이 쌓인 다양한 연금이 각기 제 역할을 하면 국민연금이 소득대체율 45~50%까지 책임져야 할 필요성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넓고 얇게’ 준다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과도한 수수료, 낮은 수익비 논란에 시달리는 사적 연금도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문안도 “공·사연금 간 역할분담 구조 개선을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이 노후보장에 있어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를 하고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을 토대로 다음 달까지 국무회의를 거쳐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확정하고 10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선에 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실제 연금 개편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금소진을 늦추기 위한 보험료 인상에서 논의가 멈춘다면 이미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쌓인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에 많은 제도 개선안이 나왔지만, 현실화되는 것은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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