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코피아난재단은 이날 트위터에서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아난 전 총장이 독보적인 위엄과 결단력으로 유엔을 새천년으로 이끌었다”고 조의를 표하면서 “그는 (세상을) 선으로 이끈 힘”이었다고 평가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위터에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유엔의 개혁가인 그는 이 세상을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고 그가 태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아난 전 총장은 확고한 신념과 아이디어·카리스마로 나와 다른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고 추모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구테흐스 총장에게 보낸 조전에서 “고인의 유족과 유엔 사무국 직원들, 가나 정부에 진정한 위로와 지원의 말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도 트위터에서 “오늘 우리는 위대한 사람이자 지도자이자 선지자였던 아난 전 총장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추모했다.
아난 전 총장은 아프리카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수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38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아난 전 총장은 가나 과학기술대에 다니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입성한 후 제네바 국제연합 난민구제위원회 고등판무관, 유엔 재정부 예산담당관 등을 지냈다. 1997년 7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돼 2006년까지 연임했는데 그는 유엔 하위 직원으로 시작해 사무총장까지 오른 첫 번째 인사다.
아난 전 총장은 재임 중 방만한 유엔 기구를 개혁하고 유엔의 활동을 안보와 개발·인권 등 3개 분야에 집중시키는 데 주력했다. 특히 국제사회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등 위기가 닥칠 때 유엔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빈곤 감소와 보건·교육의 개선, 환경 보호 등 8개 목표로 이뤄진 유엔의 새천년개발계획(MDGs)은 그가 남긴 값진 유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에는 국제사회의 화합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유엔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재임 기간 아난 전 총장의 부드러운 화법과 소통 능력은 지금도 회자된다. 1995년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때 유엔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을 상세하게 보고서에 담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그는 기자와 대사들의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능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말 퇴임한 아난 전 총장은 2013년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 ‘디 엘더스’의 회장에 오르며 정치·외교적 조언자 역할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