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간거래(P2P) 금융이 국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금융산업 핀테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해 1월에 금융위원회는 핀테크를 키우기 위한 ‘금융·IT 융합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3월 핀테크 산업 육성을 전담할 ‘핀테크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개인과 개인 간 금융거래’라는 뜻의 P2P도 핀테크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금융당국은 인식하고 향후 지원을 계획했다.
3년 넘게 시간이 흘러 P2P 금융시장은 어느덧 누적대출 규모가 2조3,000억원을 넘었지만 여느 신산업과 마찬가지로 초기 성장통을 아직 겪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P2P 업체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기 및 횡령 등 불법행위가 잇따르면서 시장은 골머리를 앓았다. 금융당국도 6월 “P2P 업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기관과 공조해 단속·처벌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불법 외에도 최근에는 대형 부동산 P2P 업체에서 920억원의 대출잔액이 있는 상태에서 부실이 터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곳이 8퍼센트다. 부동산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신용대출 전문 P2P 업체인 8퍼센트는 지난 2·4분기에 신규 가입자 9만명을 기록했다. 이는 8퍼센트 전체 가입자 18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또 8퍼센트는 2·4분기 대출 취급액이 248억8,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뛰었다.
이같이 말썽만 많았던 시기에 8퍼센트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효진(36·사진) 대표의 회사 창립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금리 대출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로 8퍼센트를 설립한 이 대표에게 부동산 PF는 애초에 성격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8퍼센트는 대환대출 등 개인신용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법인대출도 일부 취급하고 있다. 통상 P2P 업체들이 10% 후반대의 고수익을 제시하는 반면 8퍼센트는 중금리 대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인 만큼 수익도 10% 안팎의 ‘중수익’을 고수한다.
P2P가 국내에서 주목받기도 전인 2014년 11월 8퍼센트를 설립한 이 대표는 당시 9년 차 은행원이었다. 과장 승진을 얼마 앞두지 않고 이 대표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9년 동안 은행 업무를 배우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은행권이 제공하는 2~5%대 저금리와 제2금융권과 사채 등이 제공하는 20% 이상 고금리로 양분된 시장에서 중금리 대출이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신혼생활에 첫째를 임신하고 있었던 이 대표는 “당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업했다”고 떠올렸다. 남이 보기에는 무모한 도전이었을지 모르나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결과 오늘날 8퍼센트의 누적 대출취급액은 8월 기준 1,560억5,600만원으로 신용대출 P2P 업계에서 규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8퍼센트가 부동산 대출을 처음부터 취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8퍼센트는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약 1년간 부동산 담보 및 PF 대출을 취급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부동산 P2P의 위험성에 대한 금융당국과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커지자 아예 이 대표는 부동산 P2P 대세에 다소 역행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부동산 P2P도 부동산 시장에서 소규모 부동산사업자 등에게 대출을 내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부동산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신용대출에 아예 집중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사업 전략을 완전히 정착시킨 뒤 8퍼센트의 성장을 견인한 쌍두마차는 개인신용대출과 사업자대출이다. 개인신용대출 상품은 대환대출이 48.7%를 차지하고 있어 가계부채 절감에 활용되고 있다. 이용자 신용등급별 분포를 보면 4등급이 15.8%, 5등급이 22.1%, 6등급이 27.3%로 중신용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8퍼센트의 기술 기반 신용평가모델을 통해 21.4%의 고금리에서 11.7%의 중금리로 평균 이자를 낮출 수 있다. 사업자대출 부문에서는 유망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을 투자자와 연결해왔다. 대표적으로 공유자동차 업체 쏘카, 수제맥주 브랜드 더부스, 모바일 숙박예약업체 야놀자 등이 있다.
이 대표는 특히 “8퍼센트가 처음 시작할 때 더부스가 대출을 신청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며 “더부스 측과 긴 얘기를 나누고 투자상품을 출시했더니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많은 상품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만 해도 수제맥주가 국내에서 큰 인기가 없었는데 마니아층에서 더부스 상품을 알아보고 곧바로 투자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이 대표는 개인신용대출자 중에서는 당시 한 20대 남성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어렵게 한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하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고 했더니 이전에 받았던 신용대출이 남아 있어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출잔액을 빠르게 갚기 위해 우리에게 대출을 신청했고 고금리로 상환을 이어가는 대신 중금리로 대환대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기억했다.
8퍼센트는 이같이 중금리 기반의 온라인 대출 및 투자 중개 플랫폼으로 고금리 부담을 지는 대출자의 이자를 낮추고, 동시에 투자자에게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 대표는 8퍼센트가 금융회사보다는 정보기술(IT) 회사라는 성격으로 앞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기술금융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신용평가모델도 더욱 고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자체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P2P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P2P 대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법제화를 통한 시장 안정성은 뒷전에 두고 있어 왔다. 현재 국회에도 P2P금융과 관련한 법안이 4개 발의돼 있으나 논의 물결은 아직 타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용자 편의를 도우면서 서비스 제공자를 건전하게 육성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면서 “P2P 대출이 앞으로 더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면 금리단층 해소와 중소상공인 자급공급을 통해 포용적 금융이 태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곧 정부가 주도했던 금융산업 발전에 이어 민간에 의해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마중물인 셈이다.
끝으로 이 대표는 “고금리 부담을 겪는 대출자가 대환대출로 부채를 빠르게 상환한 후 8퍼센트에 투자자로 돌아올 때가 가장 보람 있다”면서 “이는 금융의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이효진 대표는 △1983년 서울 △한성과학고등학교 △포항공과대학 수학과 △2006년 우리은행 근무 △2014년 8퍼센트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