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이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을 맞아 70년 이산의 역사와 이산가족의 비극적 사연을 담은 이산가족 상봉 특집 ‘옥류관 서울 1호점’ 3부 ‘이산’을 방송한다.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2015년 이후 중단됐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재개된다. 3년 만에 금강산에서 열리는 상봉 행사지만 방문이 허락된 남측의 인원은 단 93명. ‘MBC스페셜’은 여러 이산 가족들의 사연들을 담았다.
올해로 데뷔 61주년을 맞은 영원한 디바 현미가 삼시 세끼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바로 평양냉면. 평양이 고향인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에게 평양냉면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울푸드다. 현미(본명 김명선)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6.25 전쟁 중 헤어진 두 동생 김명자, 김길자에 대한 뼈아픈 기억을 되새긴다.
남북 간 정식 교류가 없던 1998년, 현미는 북에 있는 동생 길자를 48년 만에 만나게 된다. 제3국의 중개업자를 통해 연락이 닿은 길자와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북한 당국의 엄격한 신원 확인과 삼엄한 감시 아래 현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만난 그들의 극적인 상봉의 순간은 당시 MBC 다큐멘터리로 방영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20년이 흘렀다. 현미는 상봉의 후유증으로 우울증까지 앓았다. 때만 되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내던 언니와 오빠는 이제 세상에 없다. 살아남은 가족을 대표해 대한적십자사를 찾은 현미는 떨리는 손으로 직접 상봉 신청서를 작성했다. 현미는 과연 명자와 길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헤어져 흩어진, ‘이산가족’. 이번 제21차 상봉 행사의 최종 경쟁률은 569대 1이었다. 신청 대기자들에게 상봉 재개 소식은 희망이자 고통이다. 20차례의 상봉 행사를 통해 2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헤어진 혈육을 만났지만 이후 재상봉은 커녕 서신 왕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신청을 한 13만여 명 중 과반수는 사망했고, 대부분의 생존자 또한 70세 이상의 고령자다. 그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백령도(白翎島). 본래 황해도에 속했던 이 곳은 뱃길로 30분이면 북한에 닿는다. 인천에서는 쾌속선으로 4시간이 걸리는 서해 최북단이다. 그 곳에 93세의 노모가 북녘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딸을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얼굴이 하얗고 곱던 소중한 첫 아이, 네 살 된 아이의 모습이 북에 두고 온 큰딸(김신애)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렇게 바다 건너 지척에 서로를 둔 채 70년이 흘렀다. 93세의 노모는 큰딸이 사는 고향 땅이 보이는 백령도를 70년 동안 떠나지 못했다.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20년 전 처음 상봉 신청을 한 후 자나 깨나 그려본 큰딸과의 재회다. 이번에는 늙어버린 딸, 신애를 품에 안아볼 수 있을까. 최응팔 할머니는 고향 땅이 보이는 심청각에 서서 오늘도 그리움을 노래한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냉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장인. 마지막 평양냉면 1세대 창업자 박근성 옹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옥류관 서울 1호점’을 통해 방송된 바 있는 박근성 옹의 이야기도 다시 한 번 방송된다. 평양 모란봉 냉면집의 장남이었던 그는 1951년 1.4 후퇴 당시 혈혈단신으로 피난을 온다. 그는 피난민이 모여 살던 대전 숯골에 자리를 잡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통을 지켜왔다.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서 제사도 지낼 수 없었고,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면 그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목 놓아 울었다. 매일 냉면을 만들며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박근성 옹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 곁에 그가 남긴 냉면 한 그릇.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냉면을 먹으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현실은 무엇일지,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담긴 박근성 옹의 마지막 냉면 한 그릇을 전한다.
이산가족 상봉 특집 ‘MBC스페셜’은 오늘(20일) 밤 10시 5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