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은 늘 있었지만 저성장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보기술(IT) 버블과 카드 버블이 잇따라 터지면서 한국이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중국의 고성장에 한시름 놓았던 우리 경제는 중국의 성장이 꺾이면서 다시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한 나라의 자산가격에는 실물경제의 성장성이 반영되곤 한다. 한국 주식의 장기 성과가 부진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2011년부터였다. 1980년대 이후 연평균 코스피지수는 8.6% 상승했고 2000~2010년에는 15.0% 올랐지만 2011년부터 1.4%에 그치고 있다. 주식뿐 아니라 이제 한국의 국채금리도 미국보다 낮아졌다.
한국 자산의 수익률 부진이 장기화되자 투자자들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중국·베트남증시와 미국 나스닥 기술주, 브라질 채권 투자 등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 해외투자가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투자 대상을 다변화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투자하는 해외자산에 대한 앎이 깊지 않다는 근본적 한계는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다소의 오해도 있다. 고금리에 대한 기대로 자금이 쏠린 신흥국 채권이 대표적이다. 채권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포트폴리오 수익률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가 발행한 채권은 어떤 경우에도 원리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자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흥국 채권에 이런 속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외투자에는 기본적으로 통화가치 변동성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국채의 경우 10% 이상의 이자가 발생하는 고금리상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브라질 정부로부터 이자는 꼬박꼬박 들어왔지만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손실을 안은 투자자들이 많이 나왔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터키 채권도 마찬가지이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두자릿수 대지만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높은 금리는 의미가 없어졌다. 브라질과 터키 국채는 채권보다 주식의 속성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환율을 고려하지 않은 금리 변동성만 보더라도 신흥국 국채는 채권보다 주식에 가깝다.
특히 한국에서 판매된 신흥국 고금리 국채의 경우 대부분이 경상수지 적자국에서 발행됐다. 경상수지 적자국의 통화가치는 미국의 긴축이나 글로벌 금융시장에 긴장이 발생할 때 급락하곤 한다. 10% 이상의 기대수익을 가지고 투자했다면 당연히 그에 수반되는 리스크도 채권보다 주식에 가까울 것이다. 해외자산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더라도 기대수익은 위험에 상응한다는 상식이 관철되는 선에서 투자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