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에도 이 길을 걸었다. 당시에는 괴산군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청천면 농암리로 가는 완행버스로 갈아탔다. 그때의 산행은 지금 생각해도 어설펐다. 지금이야 괴산군 선유구곡에서 대야산을 우회해 문경시로 넘어가는 도로가 났지만 그때는 수풀이 우거진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농암에서 문경시 완장리로 넘어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했다. 해는 떨어지고 비가 쏟아져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는데 천둥·벼락이 치면서 바닥으로 물이 스몄다. 그렇게 밤새고 일어나 보니 텐트를 친 자리는 무덤 옆의 평평한 공간이었다. 그 시절 봤던 비 갠 후 청명한 괴산 하늘은 아직도 명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기자에게 괴산이라는 지명은 언제나 쾌청한 산골 마을로 다가온다.
소백산자락에 위치한 괴산은 산지가 75% 이상이다. 산이 높은 만큼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곡이 많고 느티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고장 이름도 ‘느티나무 괴(槐)’에 ‘메 산(山)’을 쓴다. 실제로 신라 때는 괴양, 고려 때는 괴주로 불리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괴산으로 굳어졌다.
30년 전 비포장도로로 구불구불 이어졌던 길은 송면에서 계곡 입구까지 잘 닦인 아스팔트도로로 모습을 바꿨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시작하는 선유구곡은 ‘귀차니스트들’에게 적당한 짧은 계곡이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에서 마지막 절경인 9곡 은선암까지의 거리가 불과 1.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보로 쉬엄쉬엄 걸어도 왕복 한 시간 반이면 사진 찍고 탁족까지 즐기다 내려올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풍광이 허접한 것은 아니다. 산행을 시작하면 왼쪽에서 객을 맞는 1경 선유동문은 튀어나온 바위에 계곡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바위를 쪼아 ‘선유동문’이라는 문패를 새겨놓았다. 이후로 천벽·학소암·연단로·와룡폭·난가대·기국암·구암·은선암이 1.5㎞에 걸쳐 이어지는데 계곡의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오밀조밀한 바위와 여울이 조화를 이룬다.
선유구곡이라는 이름은 퇴계 이황이 송면리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방문했다 풍광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9곡의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선유구곡 인근에는 도로 옆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좌상이 있다. 높이 12m로 두 불상이 나란히 배치된 희귀한 구조다. 차도에서 불상 앞까지 이어진 계단을 오르자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된 난간 앞에는 과일과 향불 등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아 있다. 불상 뒤에 새겨진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 양쪽으로는 작은 부처가 조각돼 눈길을 끈다. 연풍면 원풍리 산 124-2
괴산의 특산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찰옥수수와 고추다. 특히 고추는 품질이 뛰어나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마침 오는 30일부터 9월2일까지 나흘 동안 ‘괴산 고추축제’가 열린다기에 유기농법으로 이름 난 고추 생산농가를 찾아봤다. 괴산에서 50년간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는 유대형씨는 “나는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고수하고 있다”며 “덕분에 도농 직거래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 전량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추는 병충해에 약한데다 생육기간이 길어 농사가 어려운 편”이라면서도 “올해에는 폭염 덕에 열매가 썩는 탄저병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풍작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해에는 고추 작황이 부진했다”면서도 “한 50년 고추농사를 짓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 이름이 난 것 같다”고 은근한 자랑을 곁들였다.
지난 2001년 시작해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괴산 고추축제’는 괴산읍내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는 전국 임꺽정 선발대회, 국악협회 한마당잔치, 세계 고추 전시회, 청결고추품평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고추농사 진흥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괴산)=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