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기업집단법 개편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1980년 제정된 공정거래법은 이로써 38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신규 설립·전환 지주회사 자·손자회사 보유지분율 규제 10%포인트 강화
개정안에 따르면 새로 설립하거나 전환하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보유지분율이 10%포인트 상향 조정된다. 상장회사는 현행 20%에서 30%로, 비상장회사는 40%에서 50%로 높아진다. 정부는 재벌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소유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보유지분율을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규제하고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해왔다. 하지만 실태조사 결과 오히려 적은 자본으로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현행 지분율이 유지된다. 다만 익금불산입률 등 세제혜택을 조정해 자발적으로 지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는 “이미 기존 기준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에 대해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며 “기존에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에 대해서도 문어발식 확장 등 부작용이 심해지면 규제를 강화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도 제한된다. 공익법인이 재벌 총수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따라서다. 개정안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서만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 15% 한도 내에서 허용키로 했다. 공정위는 법 시행 후 2년간은 지금처럼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이후에는 3년에 걸쳐 매년 5%포인트씩 15%까지 단계적으로 의결권 행사 비율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공정위는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을 추가로 제한하는 방안은 규제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현행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특위는 금융보험사의 단독 의결권 행사 한도를 5%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적대적 인수·합병(M&A)방어와 무관한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에는 의결권이 제한된다. 지금까지는 상장사인 경우 임원의 선·해임, 정관변경, 합병·영업양도에 한해 총수일가·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지분의 15%까지 의결권 행사가 허용됐다.
이밖에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도 확대된다. 현행법은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회사는 30%, 비상장회사는 20% 이상인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했지만 앞으로는 상장·비상장 모두 지분율 기준이 20%로 강화된다. 또 이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회사는 현재 231개에서 607개로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비상임위원 4명 전원 상임위원化…피심인 방어권 보장 강화
공정위는 또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위원 중 비상임위원 4명을 모두 상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상임으로 전환되는 4명의 위원은 대한변호사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소비자단체협의회가 각각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로 임명된다. 심의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의결 과정에서 산업계·소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도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단체 네 곳을 특정한 데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가장 대표적인 법정 단체를 찾고자 했다”면서 “비상임위원을 추천하는 직능단체를 늘리거나 복수로 추천을 받아서 판단하는 과정도 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정부가 특정 법정 단체를 지정해 대표성·독립성이 떨어지는데다 주요 규제 대상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벤처기업 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는 한 곳도 없다”며 “특정 단체를 4개 지정할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개정안에는 공정위의 조사권한 남용 가능성을 줄이고 피심인의 방어권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우선 담합을 제외한 공정거래법 사건의 처분시효를 최장 12년에서 7년으로 단축한다. 또 사무처의 심사보고서가 위원회에 상정된 이후에는 현장조사나 피심인의 진술 청취를 원칙적으로 금지토록 했다. 기업들의 협조를 받아 이뤄지던 서면실태조사에 대한 법적 근거도 명확히 하고 자료 미제출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근거도 신설했다. 그동안은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
또 고시 사항에 불과하던 변호인의 조력권 조항을 법률에 명시하고 심의 자료를 피심인이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기본적인 피심인의 방어권을 법에 명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가 경쟁법 집행 과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는데 이 법이 투명·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서 “미흡한 절차 규정을 한국사회의 발전에 걸맞은 수준으로 개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