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트럼프노믹스 ·마크로노믹스 ·J노믹스, 그 후

신경립 국제부장

고용쇼크·서민 소득수준 악화 등

소득성장, 잇단 부작용 노출에도

같은 처방 더 강화하겠다는 정부

남미 포퓰리즘 전철 밟을까 걱정




지난해 5월 이 지면을 통해 갓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보다 조금 앞서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출발선에서 세 정상이 내놓았던 저마다의 처방에 세간의 관심이 컸던 시기다. 문 대통령의 처방은 무역적자 축소와 규제 완화, 감세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고강도 개혁과 법인세 인하를 들고 나온 마크롱 대통령과 확연히 결이 달랐다.

당시 새 정부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철학 아래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 듣기에는 좋지만 단단히 뒤탈이 날 것 같은 정책들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추진되는 모습은 경제 포퓰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각각의 처방에 대한 1차 평가는 가능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미국은 2·4분기 4.1%(연율환산 기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4%를 밑돌고 지난달 비농업 분야 일자리는 1년 전보다 240만개나 늘었다. 미 증시는 9년 반 동안 강세장을 이어가며 역대 최장 기록을 수립했다. 현시점에서 미국 경제는 단연 독보적인 선순환을 보이고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는 지난해 2.2%를 기록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8%로 둔화되고 실업률은 여전히 9%대에 머물렀지만 정권 출범 이전보다 경제 사정이 호전된 것은 분명하다. 실업 수준이 높은 한편 15~64세 고용률은 65.8%로 1980년대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25~54세 핵심생산인구의 고용률은 80.4%로 미국(79.3%)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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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졌듯이 한국의 경제 상황은 처참하다.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7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지난달 신규 일자리 증가는 5,000개 수준으로 1년 전의 60분의1로 줄었다. 빈곤층의 소득 수준이 특히 악화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무리한 정책의 구멍은 혈세로 메워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부가 살리겠다던 서민들의 삶은 1년 전보다 눈에 띄게 팍팍해졌다.

물론 훗날 임기를 끝내는 세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최종 평가는 지금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노믹스의 성공을 낙관하기에는 경기과열 우려부터 무역전쟁 후유증까지 미국이 안고 있는 위험요인이 적지 않다. 프랑스는 미처 개혁의 성과를 누리기도 전에 그 후유증인 사회불안이 경제를 집어삼킬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뚝심 있게 추진하다 보면 경제 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가 한꺼번에 잡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쏟아지는 비판에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길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지층을 붙잡기 위한 정치적 선택인지 경제 해법에 대한 굳은 신념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것은 시간과 추진력일 뿐 처방은 옳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포퓰리즘 논란이 거세지만 경제 포퓰리즘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도 없다. 포퓰리즘 하면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숱한 경제위기를 겪은 남미 국가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미국 경제를 대공황에서 구해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도 경제 포퓰리즘의 일례다. 정부가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계의 경쟁을 억제하고 최저임금과 최고 노동시간을 규정한 뉴딜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도 소득주도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 경제는 애초에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부작용을 앓고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문제가 있다면 처방을 바꿔야 한다. 증상이 나빠졌는데도 같은 처방을 고집하려면 적어도 믿음을 줄 만한 근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정부의 설명으로는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성공하면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한국 경제의 새 역사를 쓰겠지만 실패한다면 이미 비참한 말로가 확인된 남미 포퓰리즘 정책의 한국판이 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후자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klsin@sedaily.com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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