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밥 먹는 풍경

안주철(1975~)

2915A38 시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 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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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을 먹고 있었다

쌀 한 톨이 밥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이나 간다는 말 들었죠. 햇볕을 쬐나, 피사리를 하나? 구멍가게 물건 팔아 쌀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은 줄 알았어요. 내가 하는 일은 힘들고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인다니까요.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고 저놈의 가게 하면 쉬울 줄 알죠? 그러니까 뒤통수 맞아도 싸요. 모든 밥에는 여든여덟 번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숟가락 가득 퍼올린 게 땀과 눈물과 굴욕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도, 그래서, 밥은 맛있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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