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취임한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국립극단이 운영하는 3개 극장 중 명동예술극장과 백성희장민호극장은 각각 관객 중심의 레퍼토리 극장, 작가 중심의 창작극장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소극장 ‘판’을 연출가 중심의 실험극장으로 차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판 감독으로 윤한솔 극단 그린피그 대표를 임명했다.
국립극단은 최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판에서 ‘연출의 판’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7개월간 윤 감독과 연극계가 함께 그린 판의 청사진을 공개하고 판의 변화를 선포했다. 기존의 국립극단 기획과 가장 크게 차별화된 점은 ‘과정 중심의 연극’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윤 감독은 “‘연출의 판’은 연출가들이 각자의 미학을 올해의 주제와 접목해 색다른 무대를 탄생시키는 자리로 연극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위한 실험의 장이 될 것”이라며 “지원금을 위한 경쟁과 심사 없이는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어려운 연극계의 상황 속에서 연출의 판은 연출가들이 포장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오롯이 낼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라고 소개했다. “경쟁과 심사에서 살아 남기 위해,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타협해야 했던 실험적인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국립극단 연극선언문’을 주제로 한 올해 쇼케이스에는 박해성(상상만발극장), 남인우(극단 북새통), 하수민(플레이씨어터 즉각반응), 김지나(이언시 스튜디오) 등 4명의 동시대 연출가가 참여한다.
문을 여는 작품은 박해성 연출의 ‘프로토콜’(9월8~10일)이다. 극장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 작품은 연극선언문 속 ‘지금 여기의 연극’에서 출발한다. 박 연출은 “과거의 연출자는 헤게모니와 책임을 동시에 가졌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 공동 창작자로서 연출의 지위를 되새겨볼 계획”이라며 “이번 작품은 응용연극연구소 소속의 연구원 6명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미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공개하면서 우리의 연극은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이밖에도 어린이청소년극을 주로 선보였던 남인우 연출은 ‘가제 317’(9월15~17일)을 통해 선언문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통찰한다. 또 관객과 창작자 사이를 오가는 파도로서 연극을 만들어온 하수민 연출은 허구적 존재인 연극이 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을 ‘아기’(10월5~7일)를 통해 탐구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티스트는 공연 자막 연구, 고려인 연구, 타 장르 협업 등을 통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온 김지나 연출이다. 김 연출은 10명의 배우들과 ‘잉그리드, 범람’(10월13~15)을 선보이기로 하고 현재 온라인 연습을 진행 중이다. 김 연출은 “온라인 세계에 머무는데 익숙하고 자기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대를 살아가는 연극배우들이 실제 만남 없이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며 “연극 제작 과정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연습’이라는 과정을 의심해보는 것은 물론 새로운 방식의 관계맺기를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8일~10월15일 소극장 판에서, 전석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