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춤한 듯 보였던 신흥국 통화불안이 터키에 이어 애초 위기의 진앙이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남미국가들을 강타하며 금융시장에 신흥국 도미노 위기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9일(이하 현지시간) 페소화 가치가 이틀 연속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자 국제통화기금(IMF)에 조기 지원을 긴급 요청했고 브라질은 21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시장에 풀기로 결정했다. 다만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도 미중 무역전쟁과 선진국 금리 인상, 해당국의 정치불안까지 겹쳐 신흥국 통화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지난 6월 IMF와 합의한 500억달러(약 55조5,800억원) 규모의 대기성 차관을 조기 집행해줄 것을 IMF에 요청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우리는 내년에 재정계획을 확실하게 이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 동원을 앞당기기로 IMF와 합의했다”며 “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성명에서 구제금융이 조기 집행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재점검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아르헨티나가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부채를 적절히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249억달러 규모의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데 연일 페소화 가치가 떨어져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날 페소화 가치는 7.94%나 급락해 사상 최저인 달러당 33.9680페소까지 미끄러졌다. 이에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40bp(1bp=0.001%) 올라 10%를 또다시 웃돌았다.
아르헨티나는 환율안정을 위해 올 들어 13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내다 파는 시장 개입을 단행해왔다. 그러나 잇단 달러 매각에도 페소화 가치 급락을 막지 못하자 결국 대통령이 직접 IMF의 조기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30%가 넘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더해 IMF로부터 대출조건으로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받아 경기는 더욱 냉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헨티나에 앞서 통화가치가 급락한 브라질도 헤알화 방어를 위해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은 31일 외환보유액 중 최대 21억5,000만달러를 시장에 공급해 헤알화를 안정시킬 예정이다. 헤알화 가치는 21일 달러당 4헤알을 돌파한 후 4.1∼4.2헤알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오는 10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환율이 달러당 4.5헤알에 근접하는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터키의 통화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전날 무디스가 20곳의 금융기관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하자 이날 3.1% 하락해 달러당 6.474리라를 기록했다. 리라화 가치는 이미 연초 대비 40% 이상 떨어진 상황이다.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로 터키의 경제신뢰지수도 7월 92.2에서 이달에는 83.9까지 하락했다. IMF는 터키 외화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신흥국들의 환율 불안이 이어지면서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다이와증권의 시노오카 마유 연구원은 “신흥국들은 경상수지 적자와 낮은 외환보유액으로 통화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선진국 금리 인상과 자국 내 정치불안으로 투자심리는 계속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