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가계소득 통계입니다. 정확한 통계 이름은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인데, 지난 5월 발표에서 1·4분기 저소득층의 가구소득이 역대 최대폭 감소하고 소득분배 지표도 지난해보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에 논란을 일으킨 통계입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이 통계를 재가공한 노동연구원·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발언하면서 한바탕 논쟁이 됐습니다.
논란은 지난달 되풀이됐습니다. 2·4분기에도 이 통계상 소득분배 지표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4분기 가계동향조사 소득 부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를 5개로 나눴을 때 하위 20%(1분위)의 소득은 132만4,9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줄었습니다. 감소폭은 1·4분기(-8.0%)보단 완화됐지만 2·4분기 기준으로 보면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가장 컸습니다.
특히 저소득 가구의 소득이 대폭 줄어든 주원인이 취업자 수 감소로 밝혀지면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취약층의 고용이 줄어들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근로소득 감소가 양극화 심화로 이어졌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10만명대 안팎에 그친 신규 취업자는 지난 7월 5,000명으로 쪼그라든 상태입니다.
◇통계 논란, 정부·여당이 자초한 것?
사실 이 통계는 원래 지난해 4·4분기를 끝으로 사라질 예정이었습니다. 통계청은 2005년부터 3년마다 8,700~9,000가구 규모의 표본을 업데이트하면서 가구 소득을 조사해왔는데, 고소득층의 응답률이 떨어지고 통계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기로 2016년 말 결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표본 가구 수도 5,500가구로 줄이고 3·4분기까지 조사 결과를 공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2016~2017년 표본과 조사 방식이 크게 바뀌어 전년도 대비 비교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4·4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 결과 가계 실질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해 8분기 만에 개선된 것으로 나오자 정부는 돌연 공표하기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분배지표가 8분기 만에 개선된 점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수 차례 이 조사결과를 인용했습니다. 여당도 지난해 11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려면 가계소득 조사가 필요하다”며 없던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현재의 ‘가계소득 통계 논란’은 결국 정부와 여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소득주도성장 뒷받침 못한 통계청장, ‘경질성’ 인사?
이렇게 살아남은 가계소득 통계와 고용 지표가 악화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통계청장이 교체됐습니다. 2·4분기 가계소득 통계가 발표된 지 3일 만입니다. 황 전 청장은 지난달 27일 이임식에서 “지난 1년 2개월 동안 큰 과오 없이 청장직을 수행했다”며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국가 통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었기 때문”이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통상 재임기간이 2년 안팎은 됐던 통계청장이 이렇다 할 사유 없이 13개월 만에 교체되자 ‘청와대가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마련하려고 교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었습니다.
황 전 청장은 이임식 직후 한 언론과 만나 경질 사유를 묻는 질문에 “저는 모른다. 그건 (청와대) 인사권자의 생각”이라며 “어쨌든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황 전 청장은 산업활동·고용동향 등 새로 생산되는 통계청 자료는 공표 전날 낮 12시 전에는 대통령에게도 공유할 수 없도록 돼있는 현행 통계법을 칼같이 지켰다고 합니다. 또 올해 가계소득 분배 악화는 표본 가구가 크게 바뀌고 전체 규모도 늘었기 때문인데 통계청이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불만에 대해서도 황 전 청장은 적극 항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표본이 그대로일 경우나 연령대별 가구 구성이 그대로일 경우 등 다양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소득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이 크게 악화하는 결과는 그대로였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 ‘통계청이 협조를 너무 안 해준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새 통계청장인 강 전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0년 이상 소득 재분배 분야를 연구해온 전문가인데다 현재 가계동향조사 표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당사자라는 점도 의혹을 키웠습니다. 강 신임 통계청장은 지난 5월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분석해 ‘조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자료를 청와대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현 한국과학기술대 교수)은 “청와대는 부정하지만 통계청장 교체는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됐다는 결과가 나온 가계동향조사 때문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소득분배 전문가를 통계청장에 앉히면 분배가 개선되게끔 통계를 조작할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지적했습니다. 통계청 공무원노동조합도 내부게시판에 올린 성명서에서 “소득분배 및 고용악화 통계가 발표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단행된 이번 청장 교체는 앞으로 발표될 통계에 대한 신뢰성 확보를 담보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며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반발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을 ‘좋지 않다’고 현재 상황을 투명하게 절차대로 공표했음에도 마치 통계 및 통계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하더니 결국엔 청장의 교체까지 이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높아지는 ‘통계 외압’ 우려에 강 신임 통계청장은 지난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사에만 근거해서 (통계를) 발표하고 대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가계소득동향조사와 관련해서도 “밖에서 볼 때와 들어와서 보는 건 다를 수 있다. 조사 방식 변경은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전면 개편…원래 고치려 했지만 ‘울상’
이런 상황에서 통계청은 문제가 된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분리한 소득과 지출 부문을 다시 합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는 통계청의 내년도 가계동향조사 예산을 올해(28억5,300만원)보다 6배 가까이 늘린 159억4,100만원으로 편성했습니다. 통계청은 내년에 통계를 재설계해 내후년인 2020년부터 통합 통계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현재 가계지출 통계는 1만2,000가구를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를 1년에 한 번 발표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계소득 통계는 8,000가구를 표본으로 해 분기별로 발표합니다. 과거와 달리 표본이 겹치지 않아 연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한 가구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를 한눈에 볼 수가 없는 겁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금은 소득과 지출의 표본이 이원화된 구조”라며 “학계와 연구소에서 연계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개편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재 면접을 통한 설문조사 결과로만 이뤄진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고용보험공단 등 실제 행정자료를 이용해 보완하는 방식도 검토 중입니다.
사실 이런 개편 방향은 청장이 바뀌기 전부터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의 정확성·신뢰도 제고를 위해 이미 준비하고 있던 내용입니다. 강 신임 통계청장도 취임 전인 지난달 16일 한 토론회에서 1·4분기 가계소득통계를 분석한 결과 표본의 변화가 없어도 소득 재분배 악화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내용을 이미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이제 ‘배나무 밑에서 갓끈 고쳐 쓴’ 모양새가 됐습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계는 신뢰가 생명인데 의식적으로라도 통계청장을 바꾸지 말았어야 했다”며 “앞으로 소득주도 성장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