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기초과학 없이 혁신성장 없다] "아무리 시급한 과학과제라도 미리 솥뚜껑 열면 밥 설익어"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단기적인 목표에만 치중하면

책임자 바뀔때마다 정책 혼란

연구 예상한 대로 안나와도

새로운 도약 실마리 되는법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대형 국책과제라든지 연구자가 계속 설익은 밥을 만들었다 엎어치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근데 아무리 급해도 다 익지 않았는데 솥뚜껑을 열면 안 되잖아요.”

노정혜(61·사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염곡동 서울청사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 입안자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연구를 어떻게 하느냐가 다 다르다. 너무 단기적인 목표를 그때그때 줘 책임자가 바뀌면 과제도 바뀌게 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 출신으로 지난 7월 초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올해 5조59억원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주로 교수들의 기초연구에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내년부터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의 정부 R&D 자금까지 총 6조5,000억원가량을 집행·관리하게 된다.


30년 이상 연구현장에서 관록을 쌓은 그는 “기초연구에서도 당장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성과를 내라’고 한다거나 ‘왜 기술이전을 안 하느냐’는 평가자의 요구도 있다”며 “평가 방식도 확 바꾸고 연구자도 좀 더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공인 생명과학의 경우 대학원에서 1990년대 초부터 기초연구가 시작됐는데 현재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견인하고 있지만 혁신기술 성과의 싹이 막 터서 올라오는 단계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시기는 아니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86년 서울대 조교수로 부임한 뒤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과학재단(현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1년 세균 유전자 관련 연구로 영예의 한국과학상을 받았던 경험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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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국한 뒤 ‘미국에서 하던 연구 말고 한국에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했고 결국 국제학술대회에서 당당히 발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니 연구비 규모가 커졌다”며 후배 연구자들에게 차별화를 주문했다. 이어 “연구가 예상한 대로 나오지 않고 엉뚱하게 나올 수도 있고 아예 안 나올 수도 있다”며 “근데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하는 계기가 되거나 다시 도약하는 실마리가 잡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연구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고 연구자가 두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멋있는 연구기획처럼 보이는데 아주 잘된 촘촘한 기획이 오히려 현장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비교적 느슨하게 기획하고 자율적으로 연구자가 집단지성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국책과제가 기획된 의도에 맞춰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 알맹이 없는 연구가 될 수 있어요.”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면 연구자가 책임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임해야 생산성이 높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대학의 연구비 등을 관리하는 산학협력단의 부실운영도 꼬집었다. “연구실 문화가 수평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대학원생에게 잡일을 시켜 경우에 따라 (교수들의) 비리도 생기죠. 정부 규정도 워낙 복잡하고 계속 바뀌는데 산단이 전문성이 없고 이직률이 높아 퀄리티가 낮아요.” 과거 서울대 연구처장과 산학협력단장을 겸하기도 했던 그는 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산단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가이드라인(금지조항만 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자가 매년 정해진 예산을 소진하는 게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허위 학술단체인 ‘와셋’에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온 것에 대해서는 “조사해 제재하되 국제학술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여지를 남겼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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