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 기업의 국내 전사들 ¦ 김주연 한국P&G 사장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주연 한국P&G 사장.김주연 한국P&G 사장.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인 CEO들을 만나보는 코너. 이번에는 김주연 한국P&G 사장이 주인공이다. 김 사장은 2016년 한국P&G 사령탑에 취임했다. 그는 고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국P&G의 성장을 이끌었다. 김주연 사장을 만나 한국P&G의 비즈니스 전략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김주연 한국P&G 사장을 인터뷰 하기 며칠 전, 좋은 뉴스 하나를 들었다. 그가 10월 1일부로 ‘아시아 질레트 총괄대표’로 영전한다는 소식이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에서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했다. 엄청나게 큰 시장을 김주연 사장에게 맡긴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김주연 사장에 대해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며칠 뒤 한국P&G 사무실에서 김주연 사장을 만났다. 그는 상냥한 말투와 자연스러운 미소가 몸에 배어 있었다. 몇마디 나눠본 뒤 어렴풋하게나마 김 사장이 가진 강점을 알 수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는 분명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기자는 우선 큰 책임과 권한을 쥐게 된 데 대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재력이 큰 시장을 맡았어요. 좀 더 큰 성장을 만들어내야 할 임무가 주어질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글로벌 브랜드 리더 자리에 있었을 때 중국을 자주 다녔는데, 그 때 그곳이 참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아시아 각국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네요.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구체적인 시장공략 전략을 세울 겁니다.”

김 사장은 곧 아시아 질레트 총괄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로 날아갈 예정이다. 앞으로 엄청나게 바빠질 게 분명하다. 그 전에 김 사장을 인터뷰 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기회였다. 김 사장은 2016년 2월 한국P&G 사장으로 취임했다.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한독약품에 입사했던 그는 1995년 한국P&G 소비자시장전략본부 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화장품 브랜드 SK-II, 질레트, 오랄비, 페브리즈, 팬틴, 헤드앤숄더, 위스퍼 등의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SK-II를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김 사장은 마케팅부장, 마케팅본부 총괄상무를 거쳐 2011년 한국인 최초로 P&G 글로벌 프랜차이즈 브랜드 리더로 발탁됐다.


그가 한국P&G의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기 때문에 중책을 맡았을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 뒤 국내 경기는 줄곧 좋지 않았다. 김 사장은 말한다. “한국P&G 역시 저성장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운 좋게도 지난 3년간 아시아 지역 내 P&G 자회사 중 한국P&G는 항상 매출 성장률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최근엔 두 자리수 성장을 했고요. 다 직원들이 고생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출 성장률 외에도 시장점유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P&G가 한국에 설립된 이후 최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어요. 질레트, 다우니, 페브리즈, 오랄비 모두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죠.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자축을 했습니다.” 김 사장은 자회사의 구체적 경영 성과를 공표할 수 없는 게 글로벌 P&G의 정책이라고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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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사장은 P&G가 181년 동안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옳은 일을 하라’는 P&G의 원칙을 꼽았다.김주연 사장은 P&G가 181년 동안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옳은 일을 하라’는 P&G의 원칙을 꼽았다.


그는 2016년 한국P&G 사장에 오르면서 “회사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 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그의 취임 일성은 계획대로 됐을까. “저는 기존 브랜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미래를 위한 신제품이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지, 직원 역량이 커지고 있는지, 이 세 가지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성장이 담보된다고 봅니다. 우선 한국P&G는 큰 브랜드들이 잘 성장했어요. ‘다우니’는 시장점유율 2위에서 1위로 올랐죠. 두 번째로, 신제품 성공률이 꽤 높았습니다. 새로 내놓았던 ‘페브리즈맨’의 성장률이 페브리즈 제품군 중 가장 높았습니다. 세 번째로 직원 역량 향상은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입니다. 한국P&G에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맡다 보니 저한테는 한국P&G와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P&G 사장으로 있을 때 직원들에게 좀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싶다는 게 제 속 마음이에요. 현재 P&G 직원들에겐 직급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본인의 능력에 따라 해외 지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요. 저는 한국 직원들을 P&G 해외지사에 많이 진출시켰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저와 HR 임원, 해당 임직원이 속한 부서장들과 모여 어떤 직원들을 해외 지사에 보내 글로벌 역량을 키워줄지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해외지사 근무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P&G 임직원들이 30%에 달하고 있어요. 원래 제 목표는 2020년 말까지 50%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김주연 사장은 소비자와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근무를 해왔다. 언제나 현장에서 소비자 의견과 반응을 듣고 전략을 세웠다. 김 사장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SK-II를 담당했을 때 3년 연속 매출 성장률 50%를 달성한 적이 있다. 김 사장은 회사 내 여러 직원들이 어떻게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으냐 궁금해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던 게 성공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기간 매출 목표를 정해 일을 할 땐 성과를 내지 못했어요. 그럴 경우 성과는 나지 않는데 팀원들만 괴롭히게 되죠. 저는 고객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늘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그렇게 고객에 집중하다 보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왔어요.”

김 사장은 SK-II를 담당하며 매장별 월별 매출 확인 업무를 없애버렸다. 매장 직원들(뷰티 카운슬러)에게 부과했던 월별 할당 매출액도 없앴다. 보너스는 매출액이 아닌 고객 응대 정도에 따라 지급했다. 김 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백화점 1층에 입점한 다른 화장품 브랜드 직원들이 SK-II 뷰티 카운슬러를 부러워했습니다. 매출 압박 없이 고객응대에 집중하면 되니까 뷰티 카운슬러들도 무척 좋아했죠. 저희는 미스터리 쇼퍼를 운영해 뷰티 카운슬러들의 고객 응대를 평가했습니다. 광고만 보고 제품을 사러 오는 고객도 많이 있는데, 사실 그건 그 고객에게 맞지 않는 제품일 수도 있어요. 저는 제품이 고객 피부와 맞지 않으면 팔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팔면 당장 그 달 매출은 오르겠지만 그 고객은 다시는 SK-II를 찾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어요.” 그는 피부 측정 기계를 구입해 매장에 비치하고 뷰티 카운슬러들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SK-II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P&G는 1837년 영국 출신 양초 제조업자 윌리엄 프록터(William Procter)와 아일랜드 출신 비누 제조업자 제임스 갬블(James Gamble)이 함께 미국 신시내티에서 창업했다. 올해로 181주년을 맞은 P&G는 질레트, 페브리즈, SK-II, 오랄비, 위스퍼, 다우니, 브라운, 팬팅 등 여러 브랜드들을 출시해 현재 70여 개 국가에서 631억 달러 매출(2017년 기준)을 올리고 있다.

P&G가 181년 동안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김 사장은 망설임 없이 ‘옳은 일을 하라’는 P&G의 원칙을 꼽았다. “제가 P&G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P&G는 새로 진출한 나라의 시장 상황과 거래 관행을 존중하지만, 자체 원칙과 행동지침에 어긋나는 사안에 대해선 결코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 P&G가 중국 항만에서 수입 물품을 받기 위해 세관 직원에게 뇌물을 줘야 하나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도 원칙에 벗어나는 뇌물공여보단 수입 통관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죠. P&G에 입사하면 가장 먼저 법무실에서 윤리경영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회사 실적을 위해 양심을 판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원칙을 한번 세워 놓으면 일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올해 3월 한국P&G 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사내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비유(BE YOU)’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은 이를 축하하는 ‘비 유어 데이(BE YOU DAY)’ 행사 모습.올해 3월 한국P&G 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사내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비유(BE YOU)’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은 이를 축하하는 ‘비 유어 데이(BE YOU DAY)’ 행사 모습.


P&G가 창사 이래 지켜온 기본 인사 원칙은 신입사원을 채용해 경쟁력 있는 인재로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교육을 통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키우겠다는 자신감과 의지의 표현이다. 그만큼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은 실력이 검증된 경력자를 위주로 채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P&G는 신입사원 채용을 원칙으로 한다. 직원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및 업무 기회를 제공하고, 내부승진(promotion from within) 제도를 통해 리더로 성장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렇게 하면 독창적인 기업문화 DNA가 유지되고, 조직 내부에서 경영진으로 성장한 리더들이 P&G의 철학과 문화를 누구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김 사장 스스로가 경험한 바이다. 내친 김에 김 사장이 과거 한독약품에서 한국P&G로 이직한 이유를 물어봤다. 김 사장은 너무 오래 전 일이라며 일단 웃었다. “24년 전 일이라서요. 우연히 신문 채용 공고를 보고 이직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한국P&G에 흥미를 느낀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독약품에서 한때 조사 업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궁금한 걸 알아가는 게 제 성향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조사업무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어요. 그런데 한국P&G가 낸 채용 공고를 보니 조사부에서 일할 직원을 찾고 있는 거였어요. 그렇게 한국P&G 조사부에 입사해 담당 임원까지 하고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취업이나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취업준비생과 사회 초년생들에게 조언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의미 없는 스펙 쌓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살찌울 수 있는 실제적인 경험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공모전에 나가는 것보다 옷가게에서 직접 옷을 팔아보는 게 더 훌륭한 스펙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자신의 콘텐츠가 꽉 차 있으면 의사소통 정도만 돼도 괜찮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에 많이 퍼져있으면 좋겠어요. 한국P&G에 제 후임이 오면 꼭 저희 직원들 해외근무 경험 50%를 채워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하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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