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전남 진도] 다도해 물들인 황홀한 낙조...세상사 시름을 잊다

절 양쪽으로 계곡 흐르는 쌍계사

동백 등 상록 활엽수 터널 장관

한국 동양화의 산실 운림산방엔

허련 등 수묵 거장들의 묵향 가득

진도의 세방낙조가 유명세를 타는 것은 전망대 앞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때문이다.진도의 세방낙조가 유명세를 타는 것은 전망대 앞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진도는 힘들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실종자 수색과 인양 작업으로 주민들은 생계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난리통에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있을 리 없었다. 진도의 주산물인 미역·다시마·전복 판매도 급감했다. 진도산이라는 표찰을 보고 반송돼 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울금·파 등 다른 농산물도 판로를 찾지 못해 고생을 했다.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시간이었다. 만 4년이 지난 올해 진도는 겨우 세월호 이전만큼 경기가 회복됐다. 더위도 지쳐가는 9월 초 끔찍하고 안타까웠던 사건 후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진도의 풍광에는 예전보다 짙푸른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었다.

진도에서 차가 먼저 멈춘 곳은 쌍계사다.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큰 절로 숙종23년(1697년) 섬 내 최고봉인 첨찰산(482m) 남쪽에 건립됐다. 이 절이 유명한 것은 주위를 둘러싼 숲 때문이다. 절을 끼고 산을 오르는 길은 구실잣밤나무·동백나무·참가시나무·차나무 등과 같은 상록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려 대낮에도 어두침침할 정도다. 그런 이유로 이 숲은 천연기념물 107호로 지정됐다. 3년 전 기자를 안내하며 목이 메었던 이평기 해설사는 이제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이 나무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구실잣밤나무로 밤꽃이 피고, 열매는 도토리 같은데 맛은 잣과 비슷해 주전부리로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나무들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오르면 정상까지는 1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이 나은 동양화가 소치 허련의 화실로 200년간 4대에 걸쳐 5명의 화가를 배출해낸 동양화의 산실이다.운림산방은 조선이 나은 동양화가 소치 허련의 화실로 200년간 4대에 걸쳐 5명의 화가를 배출해낸 동양화의 산실이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쌍계사는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흘러 쌍계(雙溪)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 절은 최근 대웅전을 보수하면서 유화물감으로 그린 탱화가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진도가 낳은 동양화가 허백련의 친구인 고희동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유는 그가 당시로는 보기 드문 서양화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희동 화백은 허백련을 찾아와 진도에 머문 적이 있어 이 같은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


쌍계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운림산방도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이 낳은 동양화가 소치 허련의 화실로 200년간 4대에 걸쳐 5명의 화가를 배출해낸 동양화의 산실이다. 허련의 손자 남농 허건은 운림산방을 지난 1981년 국가에 헌납했고 이후 전남문화재 51호로 지정됐다. 이 터를 잡은 허련은 1808년 허각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해남으로 건너가 초의선사를 사사한 후 늦은 나이인 28세에 동양화에 입문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초의선사가 추사에게 소치의 그림을 보냈고 그의 실력을 간파한 추사는 허련을 흔쾌히 제자로 받아들여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하게 된다. 이후 명문대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장안의 지가를 높였고, 마침내 42세의 나이에 낙선재에서 헌종을 알현했다. 이후 그는 열다섯 차례나 임금을 독대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이 해설사는 “1856년 스승인 추사가 죽자 허련은 이곳에 운림각을 짓고 기거하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며 “이후 4대에 걸쳐 거장들을 배출하며 한국동양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세방낙조를 보려던 계획이 틀어질 것 같아 차를 몰아 서쪽으로 향했다. 평지에서는 보이던 해가 산이 나타나면 가려져 마음이 조급해졌다. 땅거미가 몰려와 하늘과 산의 경계가 명료해질 때쯤 간신히 전망대에 당도해 카메라를 챙겨 내렸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에 서서 휴대폰으로 낙조를 찍고 있었다. 해가 지는 서해 어느 곳인들 아름답지 않으랴마는 이곳이 특히 유명세를 타는 것은 전망대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 때문이다.

바다만 펼쳐져 밋밋한 낙조 풍경과 달리 점점이 펼쳐진 세방낙조의 섬들은 기울어진 햇살을 뒤통수로 가리면서 검은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붉은 해를 등진 모습은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연출했다. 그도 모자라 하늘은 갈매기의 깃털을 뽑아 파란 캔버스 위에 붓질을 했다. 그렇게 그려진 분홍빛 새털구름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 내려다보고 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자 사위는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집들 창문에 하나둘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는 잔챙이 같은 전등불쯤은 안중에 없는 듯, 새벽의 재회를 기약하며 푸른 바다를 덮고 잠을 청했다. /글·사진(진도)=우현석객원기자

관련기사



◇가는 길

▲대중교통

SR수서역-목포역-200번 버스-목포종합버스터미널-진도공용터미널-농어촌버스(운림산방 하차)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고하대로-대불로-진도대로-남산로-왕온로-운림산방로

나윤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