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누리C&M은 매년 30% 이상 성장을 거듭하는 국내 최대 종이컵 전문 생산업체다. 한 우물을 판 우직함과 과감한 투자가 이 기업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인설 온누리C&M 대표를 만나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인천시 강화군에 자리 잡은 온누리C&M은 예상과 달리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2만 3,000㎡ 부지에 건물 6개가 서 있었다. 건물 곳곳에 있는 공장과 창고 사이를 지게차와 트럭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이인설 온누리C&M 대표는 기자를 공장으로 안내했다. 종이컵 제품을 담은 박스 더미와 커다란 두루마리 종이 뭉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창고를 지나자 공장이 나타났다. 공장 안에는 종이컵 만드는 기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계에 걸린 두루마리 종이가 풀리면서 순식간에 종이컵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종이컵은 진공파이프를 통해 검수실로 이동했다.
이인설 대표는 말한다. “건물 6개 동에 이런 제조공장 3곳과 인쇄공장 2곳이 흩어져 있습니다. 종이컵 제조 기계만 모두 150대가 있어요. 4~5년에 걸쳐 기계를 설치했는데, 설비 값만 200억 원 이상이 들었습니다.”
온누리C&M은 국내 최대 종이컵 생산업체다. 주력 제품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드는 특수 종이컵이다. 특수컵 국내 시장점유율 20%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인설 대표는 말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판기용 민무늬 종이컵(업계에선 6.5온스 컵이라고 부른다)은 영세 업체들이 만들어 경쟁하는 것이어서 저희는 생산하지 않습니다.”
온누리C&M은 규모가 큰 거래처에서 주문을 받아 50여 가지 크기의 종이컵을 생산하고 있다. 거래처는 800여 곳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나 커피전문점, 멀티플렉스 극장, 상조회사 등이 거기에 포함돼 있다. 임직원 120명이 근무하고 있는 온누리C&M은 지난해 매출액 199억 원을 올렸다. 올해는 250억 원을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이인설 대표는 첫 사회 생활을 대우조선해양 엔지니어로 시작했다. 당시 월급은 꽤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년짜리 재형저축(모든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만기 10년 적립식 저축상품으로 비과세 혜택이 있다)을 들었다. 마침내 1985년 퇴사해 슈퍼마켓을 차렸다. 돈은 제법 벌렸다. 그러나 쉴 새 없이 하는 업종 특성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매일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휴일도 쉴 수 없었고요.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죠. 그러던 차에 생수용 접이식 종이컵 제조사업을 하던 매제가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슈퍼마켓을 정리했습니다. 그게 1992년이었어요.”
막상 일을 해보니 생수용 접이식 종이컵 시장은 너무 작았다. 결국엔 매제가 종이컵 사업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대신 이 대표가 1995년 직접 종이컵 제조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일반 자판기용 종이컵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을 온누리C&M으로 지은 이 대표는 곧바로 과거 쌓았던 엔지니어 경험을 살렸다. 공장에 있던 기존 종이컵 기계를 손봐 생산성을 두 배 이상 높였다. 그래도 사업은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거 같아요. 자금 조달은 물론, 거래처 확보도 힘들었으니까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조그만 공장에서 온 몸이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5분 만에 식사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1997년까지 세월이 흘렀다. 모두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외환위기가 찾아왔지만, 그 위기는 오히려 이 대표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외환위기가 온누리C&M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우리 회사는 빚이 없었어요. 다른 종이컵 업체들은 빚내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그때 은행에서 빚 얻어 땅 샀던 종이컵 업체들이 모두 망했습니다. 그 업체들이 생산하던 종이컵 물량이 결국 우리 회사로 몰려 들어왔죠. 그때부터 매년 30% 이상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온누리C&M은 2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쏟아지는 종이컵 주문량에 맞추기 위해 공장을 확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문이 너무 많이 늘어 1년만 지나면 물량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온누리 C&M은 3년 만에 시장점유율 60%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2012년 이인설 대표는 물 마시기 불편한 꼬깔모양 종이컵(일명 ‘꼬깔컵’이라고 한다)을 대신해 ‘세 모금 컵’을 개발했다. 꼬깔컵과 달리 내려놓을 수 있고 컵 내부에 코팅을 한 제품이다. 세 모금 컵을 개발한 그는 생산라인을 다른 업체에 넘겼다. 공장에 기계 놓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말한다. “그때 좀 아쉬웠어요. 판매가 잘 되는 제품을 개발하고도 생산을 못했으니까요. 지금 이 공장은 7번째 이사한 곳입니다. 이 공장도 곧 증설을 해야 할 판입니다.”
이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시장 변화를 살폈다. 온누리C&M이 만들던 일반 종이컵은 단순한 제품이기 때문에 단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대표는 10년 후가 되면 일반 종이컵 이익률이 ‘제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 대표는 당시 커피 프랜차이즈와 멀티플렉스 극장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걸 간파했다. 그 후 온누리C&M은 다양한 크기와 색상을 가진 특수 종이컵을 주력 상품으로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자판기용 민무늬 종이컵 생산은 중단했다.
특수 종이컵 생산 초기, PE(폴리에틸렌) 코팅과 인쇄공정은 모두 외주로 돌렸다. 하지만 곧 문제가 드러났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우리가 원하는 인쇄품질이 나오지 않았어요. 인쇄공장과 저희 공장이 떨어져 있다 보니 운송 과정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고요. 매일 5톤 트럭 10대 분의 물량을 출하해야 하는데 납기 맞추기가 많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 대표는 공장에 코팅, 인쇄, 재단 기계까지 모두 들여놓았다. 제조설비 설계와 제작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 대표는 설비업체와 직접 협의해 온누리C&M 공장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설비들을 제작해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원자재(종이) 수급을 제외하곤 모든 공정이 물류 이동 없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원라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었다. 현재 온누리C&M은 발주처에서 주문받은 제품을 일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다. 당연히 발주처에서 요구한 종이컵 문양을 종이에 인쇄하기 위해 전문 인쇄소에 맡겨야 하는 다른 업체들보다 경쟁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인설 대표는 “오늘 주문을 받으면 바로 다음날 제품을 만들어 배송할 수 있다”며 “인쇄까지 직접 하니까 다른 업체에 비해 이익률이 더 크다”고 말했다.
온누리C&M은 지금도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사용되는 팝콘 용기나 음료컵 외에도 최근에는 종이 뚜껑이 장착된 떡국·떡볶이 용기 등을 출시했다. 그 밖에도 기존에 골판지로 만들던 ‘컵홀더’를 대신, 화려한 컬러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능성 ‘컬러 컵홀더’를 개발해 특허 출원까지 마쳤다.
온누리C&M은 4년 전부터 일본과 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까다로운 외국 기업의 품질심사 기준에 맞추기 위해 품질 향상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결과다. 온누리C&M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철저한 품질관리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는 종이컵 내부를 옥수수에서 추출한 ‘PLA’ 성분으로 코팅한 친환경 종이컵을 수출하고 있다. 이 대표는 말한다. “현재 전체 매출에서 수출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입니다. 중국은 워낙 저가 시장이라 우리가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저는 수출 시장 개척이 저희에게 당면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온누리C&M을 더 크게 성장시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