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이 하루에 사용하는 종이컵은 평균 3개로, 일회용 종이컵 소비량은 연간 166억개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폴리에틸렌(PE) 코팅 종이컵으로 재활용은 물론 재원료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땅에 묻어도 자연 분해되는데 20~30년 이상 걸리고 이 역시 100% 분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각해도 유해가스 등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환경 이슈가 부상하는 가운데 100% 재원료화가 가능한 친환경 식품포장용지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벤처기업이 주목을 끌고 있다.
윤철(52·사진) 리페이퍼 대표는 5일 서울 강동구 상일로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세계 최초로 PE 코팅컵과 PLA(Poly Lactic Acid) 코팅컵의 재활용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수용성 코팅 원료를 개발했다”면서 “국내외 특허 5개를 갖고 있는 친환경 코팅 기술을 무기로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 오는 2020년 500억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40억원 매출, 내년 25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는 만큼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리페이퍼가 개발한 코팅 약품은 아크릴레이트계를 원료로, 전자레인지나 오븐에서 조리해도 코팅층 단면이 변형되거나 녹아 내리지 않는다. 100% 재원료화가 가능하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코팅제로, 태워도 유해가스가 방출되지 않고 땅에 묻어도 쉽게 자연 분해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94년 한솔제지에 입사한 윤 대표는 기술개발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마치고 창업진흥원의 정책 자금 지원을 받아 지난 2014년 7월 리페이퍼를 창업했다. 그 해 10월 참가한 ‘대한민국 친환경대전 전시회’에서 눈에 띄어 NICE그룹의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이듬해엔 아예 계열사로 편입됐다. 윤 대표는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인쇄용지)로서의 종이는 수명을 다하고 있지만, 폐 플라스틱 문제가 환경 이슈로 떠오르면서 포장소재로서의 종이는 존재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리페이퍼의 친환경 수용성 코팅 기술도 이론적으로는 20여년 전에도 개발할 수 있었지만, 폴리에틸렌 가격이 지금의 절반 이하 수준에다 코팅제 주 재료인 아크릴레이트계의 가격이 2배 이상 비쌌기 때문에 시장성이 크게 떨어졌다”며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환경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데다 원료 가격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시장이 친환경 코팅 기술이 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에는 유럽 내 3개 제지회사가 합병한 글로벌 제지 전문기업 ‘렉타(Lecta)그룹’과 친환경 식품 용지 코팅제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친환경 수용성 코팅제 1만톤(약 350억원 규모)을 오는 2022년까지 5년간 독점 공급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리페이퍼의 기술이 적용된 렉타 제품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독점 판매권도 확보했다.
연 매출 2조원 규모의 렉타그룹이 이름도 낯선 동양의 스타트업과 손을 잡은 이유에 대해 윤 대표는 ‘돌고래론’을 폈다. 그는 “렉타그룹 측에 유명 제지업체가 아닌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큰 기업은 고래와 마찬가지라 방향을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 회사는 돌고래와 같아 언제든지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렉타그룹 역시 2014년부터 이노베이션팀을 꾸려 바스프 등 글로벌 화학기업의 코팅제를 적용해 친환경 컵지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전세계 40여종의 친환경 코팅원단을 놓고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친환경성, 종이용기의 특성, 컵 성형성 등 모든 항목에서 리페이퍼의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리페이퍼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종이컵이나 용기를 만드는 판지류의 시장 규모는 336만톤(2015년 기준)으로 추정되며 이 중에서 자연분해성 코팅을 이용한 코팅지는 2020년까지 53만톤(약 1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렉타그룹과의 계약 체결 이후 리페이퍼의 기술력이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지난해 10월 미국 최대 일회용컵 생산업체와 친환경 식품용기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는 무림제지와 함께 월 1,000만원 규모의 친환경 일회용 종이컵을 생산하는 등 거래처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현재 북미 지역 대형 용기 제조업체와 긴밀히 협의하는 만큼 내년 상반기에는 대형 계약이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최근에는 친환경 식품포장재의 재활용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종이식품 용지 중에서 세계 최초로 ‘UL(Underwriters Laboratories) 2485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미국 제지펄프공업 시험규격에 의한 표준 펄프화 시험과 북미 제지연구기관의 재펄프화 실험 등에서 평균 97~98%의 높은 재생섬유 수율 및 재펄프화율을 기록한 것. 재활용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반 PE나 PLA 성분이 코팅된 식품용지와 달리 일반적인 ‘종이’ 수준의 재활용성을 구현한 것으로, 리페이퍼만의 차별화된 친환경 코팅 기술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리페이퍼는 1차적으로는 PE 코팅 종이용기를 대체하고, 2단계로는 알루미늄이 포함된 복합포장재(스낵포장지나 김포장지 등)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윤 대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종이는 인간에게 가장 친화적이며, 친환경적”이라며 “지난 세기 종이의 위상을 플라스틱에게 빼앗겼는데 리페이퍼의 기술로 종이의 위상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종이를 리사이클하는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종이의 귀환, 즉 ‘리턴 투 페이퍼(Return to Paper)’의 시대를 여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