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아파트 최상층 에너지사용량이 0?

홍희기 대한설비공학회장·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절반 이상의 인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그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끔찍하게 더웠던 올여름, 아파트 최상층에 거주하는 분들은 더위와 전기사용료에 치를 떨었을 듯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최상층이야말로 에너지사용량이 0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파트 최상층의 에너지소비량이 많은 것은 상식이다. 겨울철 중간층보다 20~40%나 많은 난방비가 드는데 여름철 냉방은 지붕에 고스란히 내리쬐는 햇빛의 영향으로 이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붕이 있는 단독주택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열손실의 주역인 지붕을 에너지 획득원으로 활용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나 제로에너지빌딩(Zero Energy Building·ZEB)이라는 에너지절약건물을 들어봤을 법하다. 몇 해 전 패시브하우스콘서트라는 서적이 발간됐는데 상당히 전문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집필돼 학생들에게 추천도서로 권장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집필자가 현직 공무원이라는 점에 상당히 놀랐으며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패시브하우스와 공무원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됐다.

패시브하우스는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차단함으로써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 실내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전히 조명이나 가전기기, 냉난방·온수설비를 위해서는 별도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제로에너지빌딩은 이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패시브하우스에 에너지절약설비와 신재생에너지가 접목된 것이다.


2000년대에 용인에 만들어진 초창기 제로에너지빌딩에는 수십 가지의 에너지절약기술이 포함돼 있었다. 이 모든 기술이 포함되면 비용은 논하기 곤란할 정도로 상승하나 제로에너지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이것을 ‘완전한 제로에너지빌딩(Net ZEB·NZEB)’이라 부른다. 적용된 기술 중에는 에너지절약 효과가 큰 것도 있지만 미미한 것도 포함돼 있다. 미미한 것들은 제외하고 굵직한 요소만 사용해 경제성을 살린 것을 ‘거의 제로에너지빌딩(nearly ZEB·nZEB)’이라 부른다.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신축되는 모든 건축물은 제로에너지빌딩으로 짓도록 하겠다는 방침인데 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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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거의 패시브하우스의 요건을 갖추고 있어 에너지소비량도 매우 적기 때문에 지붕과 벽체만 활용할 수 있으면 손쉽게 제로에너지빌딩을 구현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중 아파트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지붕이나 벽체에 내리쬐는 햇빛을 획득하는 태양에너지밖에 없다. 지붕까지 있는 최상층 세대를 대상으로 공상 같은 이야기를 전개해본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열집열기에서 생산된 온수를 데시컨트냉방기의 열원으로 공급하면 냉방은 물론 환기까지 덤으로 해결된다. 겨울에는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온수는 연중 공짜다. 나머지 면적에는 태양전지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가전이나 조명에 사용하다 남으면 외부에 판매하고 부족하면 전력회사로부터 공급받는다.

이 모든 과정은 복잡하게 시스템으로 얽혀 있어 직접 조작할 것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데 바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접목으로 입주자는 그냥 가전제품처럼 사용하면 된다. 고장이 나거나 점검이 필요하면 알아서 AS센터로 연락해주고 담당자가 달려와서 해결해준다.

놀라운 것은 이런 공상 같은 일이 실제로 가능하며 요소기술도 거의 개발이 완료됐다는 점이다.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가격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핵심요소인 ‘열로 작동되는 데시컨트냉방기’는 유럽이나 일본보다도 월등히 경쟁력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보급책으로 신축 혹은 리모델링하는 아파트를 비롯해 연립주택·타운하우스 등에 적용 시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예전에 한 태양열 관계자는 건물 지붕이나 남쪽 벽을 볼 때마다 유전으로 보인다고 혼잣말을 하고는 했다. 햇빛발전소로 파헤쳐지는 애꿎은 야산은 그냥 놓아두고 건물에 쏟아지는 저 아까운 에너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최상층 테라스에 앉아 저녁노을을 즐기는 제로에너지하우스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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