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달랑 신랑감 사진 한장 들고 하와이로...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웃픈' 스토리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아홉번째 작품 '운명' 오늘 선봬

하와이 이주 과정·애환 등 담아




1915년 매일신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에 있난 신랑 죠션에 있난 신부. 사진만 보고 혼약 큰 낭패.’


지금으로선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자아내는 한 줄의 문장 속에는 당대인들의 애환과 사회문제가 함축돼 있다. 일제강점기 극도로 악화한 경제 상황을 이겨내고 일제의 강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기 위해 조선인들의 하와이 이주 러시가 이어졌고 여성들은 이른바 ‘사진 결혼’을 통해 태평양을 건넜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으로 7일부터 선보이는 ‘운명’은 계몽주의, 인도주의적 경향을 지닌 작품들로 1920년대 호평을 받았던 윤백남 작가가 당시 흔했던 하와이 사진결혼의 폐해를 드러내기 위해 창작한 희곡이다. 윤 작가는 한국 최초의 영화 ‘월하의 맹서’ 극본,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을 집필한 대중문화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근현대 희곡을 현대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기획에서 국립극단이 올해의 작품으로 ‘운명’을 택한 이유는 극적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작품 전반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극단 근현대극 자문위원인 이상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뛰어난 연극성으로 근현대 연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운명’이 아직 현대에서 크게 재조명되지 않아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에 추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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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주인공 박메리는 결혼하게 될 남자가 훌륭한 인격과 부를 지닌 사람이라는 중매자의 말만 믿고 하와이로 향하지만 실제 남편은 구두 수선공에 도박과 음주를 즐기며 술주정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하와이의 척박한 노동환경을 견디기 힘들었던 조선인들의 탈선이 있었고 사진결혼을 통해 하와이로 건너간 여성들도 기대와 달리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내야 했던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 설정이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조선인들의 이주 과정, 종교 생활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 신부’들의 실제 목소리를 담은 영상을 활용할 예정이다. 연출은 극단 죽죽의 대표이자 제1회 연강예술상 공연부문 수상자인 김낙형이 맡았다.

국립극단이 지난 2014년부터 선보인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특히 올해부터 근현대극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작품 선정부터 작품이 무대화되는 전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작품의 기획·제작에 전문성을 더했다. 더불어 현대 관객들이 근현대극을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연극의 풍경 1920-1930’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우리나라의 근현대 희곡은 연극성이 뛰어난 인물과 언어, 서사를 갖추고 있어 연극사적, 문학사적으로 문제작이라 할 만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다”며 “국립극단은 앞으로도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통해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근대 작가 및 작품을 소개하고 우리 연극의 자산을 늘리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9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 사진제공=국립극단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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