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김정은-트럼프 특사단 통한 ‘간접대화’…비핵화협상에 순풍 부나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대북특사단의 지난 5일 방북을 계기로 그동안 교착 국면에 처해있던 북미 비핵화 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약하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감사를 표하며 “함께 해내자”고 화답하면서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 실현 희망’을 언급하며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해 북미 간 비핵화-체제보장 빅딜에 속도를 올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 이후 전망이 어두웠던 비핵화 논의가 대북특사단을 통해 나눈 간접대화로 극적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커졌다.


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의 70년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6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 어린 시선에 대한 아쉬움도 표하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및 서해 발사장 해체 등을 ‘선제적 조치’로 언급했다. 또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여 달라고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와 함께 종전선언이 한미동맹 약화나 주한미군 철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미국 내 우려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라며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은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어가 결실을 얻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제시해온 첫 임기 내 주요 비핵화 달성 시한을 일단 수락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11월 중간선거와 대선 재선 성공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파고들었다는 해석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다. 지난달 폼페이오 장관의 제4차 평양행을 전격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단을 통해 전해온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특사단은 이번 방북에서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의 통화 등의 ‘경로’를 통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했다. 북미 양측이 특사단의 ‘중재외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화한 것이다. 서로 상대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메시지에 파격적인 제안 등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을지, 그리고 우리 정부가 제안한 구체적 중재안도 포함됐는지 관심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자신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한 데 대해 트윗을 통해 “김 위원장 감사하다. 우리는 함께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환영 입장을 보인 가운데 그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을 총괄해온 폼페이오 장관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반응이다. 인도를 방문해 있는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협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할 일이 산적해 있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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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라는 최종 목표를 재확인하는 한편, 북한 해커를 기소하고 제재하는 등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해 처음으로 철퇴를 내렸다. 여기에는 북측으로부터 비핵화 초기 행동에 대한 ‘최대치’를 견인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8,100만 달러를 빼내 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지난해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 등의 해킹을 한 혐의로 북한 해커 박진혁과 관련 위장회사인 ‘조선 엑스포 합영회사’에 대해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특히 법무부는 박진혁을 기소함으로써 ‘법적 대응’과 ‘제재’를 동시에 단행했다.

이와 별도로 하원은 본회의에서 전날 북한 등 국가 차원의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 억제와 대응 법안’을 가결하는 등 ‘사이버 위협’에 대한 의회와 행정부 차원의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국무부는 오는 10∼15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취임 후 첫 동북아를 방문하는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일정을 발표하고 비건 특별대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는 연합뉴스의 별도 반응 요청에도 ‘목표는 FFVD’라고 재확인했다.

한편 북미 협상의 돌파구가 열리더라도 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했지만 미국이 그동안 종전선언을 위해 선행해야 할 실질적 비핵화 초기 조치로 요구해온 핵 리스트 신고 등 구체적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및 서해 발사장 해체 등을 ‘선제적 조치’로 거론하면서 이에 대한 상응 조치가 이뤄지면 더욱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행동 원칙도 분명히 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대로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어야 그다음 비핵화 단계로 옮겨갈 수 있다는 걸 재확인한 것으로, 미국과의 간극을 다시 노출한 대목이다.

결국, 무엇보다 종전선언과 실질적 초기 비핵화 조치의 선후관계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온 북미가 접점을 마련할지가 최대 관건인 상태다. 따라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빠르게 해소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간 절충점 조율 등 모멘텀이 마련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가 희망 사항으로 염두에 둔 ‘9월 종전선언’ 시간표는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위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이 실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간 비핵화 협상에 다시 녹색 불이 켜지면서 연내 종전선언 성사 등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를 둘러싼 정세가 중대 전환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당장 비건 대표가 내주 한국 등 동북아 카운터파트들과의 조율 과정에서 비핵화 협상안에 대한 어떤 보따리를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이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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