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라이벌을 의식하지 말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81>경쟁사회 생존법

승마 경주서 전방만 보고 달리듯

경쟁자 눈치만 보다간 성공 못해

뚜렷한 목표·방향부터 설정하고

동료와 호흡 맞춰 장애 넘어가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옛날 옛적에 임금님이 한 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잘 타는 것이 부러웠다. 자신도 누구 못지않게 말을 잘 타고 싶었다. 임금이 말을 잘 탄다고 하는 것은 이미지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위신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방을 붙였다. “짐에게 승마를 가르칠 천하제일의 마부를 찾는다”고. 공개 오디션을 통해 드디어 최고의 마부가 선발된다. 그리고 왕은 마부에게서 말을 타는 법을 배운다. 과연 잘 가르친다. 말을 잘 다루는 것은 기본이다. 말을 잘 탄다는 것과 말 타는 법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꼭 같은 재주는 아니다. 골프를 잘 치는 선수라고 해서 다 최고의 레슨 프로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거스 히딩크처럼 선수로서는 그저 그랬지만 코치로 세계적인 명망을 날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마술 레슨 프로는 임금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다 가르쳤는지 어느덧 임금도 수준급에 이르게 됐다. 물론 임금도 마부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기도 하다. 어느 날 임금이 “여보게 자네가 날 열심히 가르친 것을 최종적으로 검토해보고 싶네. 나하고 누가 이기는지 시합이나 한 번 해보세.” 상관이 자신을 시험해보고자 할 때 사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만약에 시합에서 마부가 이기면 왕이 진노할 수도 있다. 당장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무엄하게 지존이 왕을 이겼다는 것이 죄목이 될 것이다. 왕이 이기면 이제 “너는 나한테도 지는 B급 프로다”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독재자의 마음이 어디로 튈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왕의 제안에 대한 최상책은 그냥 시합을 이리저리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 마부는 덜컥 제안을 받아들인다. 시합이 열린다. 그것도 모든 신하가 보는 앞에서 열린다. “땅”하고 신호가 떨어진다. 둘 다 전력 질주한다. 누가 이겼을까. 당연히 마부가 이긴다. 왕이 좀 머쓱해하더니 재도전한다. “여보게 한 판 더 하세.” 어느 명령이라고 거역하겠는가. 다시 두 번째 시합이 벌어진다. “땅”하는 소리와 함께 두 말은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결과는 역시 마부의 승리다. 자, 대개 두 번 정도 지고 나면 그냥 지쳐서라도 “그래 오늘 내가 졌네. 다음에 다시 해보세”라고 할 텐데 이 왕은 승부욕이 워낙 강한지라 다시 시합할 것을 명령한다. “한 번 더.” 이제 세 번째 시합까지 왕이 지고 만다. 이때가 마부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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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왕이 이렇게 묻는다. “여보게. 나는 자네가 나한테 승마의 모든 기본을 다 가르쳐 줬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시합을 요청했던 걸세. 그런데 왜 연속 3판을 내가 다 졌는지 이유를 설명해주게.”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이 마부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접대 골프를 쳐 본 사람은 다 안다. 갑과 플레이하는 을은 자신이 더 잘 치더라도 슬쩍 져 준다. 그것도 기술적으로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져준다. 누가 봐도 봐주는 것이 티 나게 져주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게 정말 힘든 것이다. 접대 골프만이 아니라 세상만사에서 일부러 져주면서 티 안 나게 져주는 것, 이게 사실 제일 힘들다.

왕이 왜 자기가 졌는지 패인을 알고 싶어 한다. 마부는 그냥 립서비스로 “제가 운이 좀 좋았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폐하께서는 선천적으로 승마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와 같은 무례한 멘트까지 날릴 수는 없었겠지만 이 마부는 다음과 같이 왕의 패인을 돌직구로 지적한다. “세 번의 시합을 치르는 동안 폐하께서는 줄곧 저를 쳐다보시면서 경주하셨습니다. 경쟁자를 너무 의식한 것이 바로 패인입니다. 말을 탈 때는 세 가지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첫째, 나는 달려야 할 방향을 잘 알고 있는가. 둘째, 나는 내 말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가. 셋째, 나는 앞에 있는 장애물을 잘 보고 있는가.”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의 현대식 각색 버전이다.

B급 리더는 끊임없이 경쟁조직을 의식한다. 경쟁자에 신경 쓰지 말라. 대신 A급 리더는 ‘나는 우리 조직이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는가. 나는 내 부하들과 호흡이 잘 맞고 있는가. 나는 장애물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질문한다. ‘경쟁회사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궁금해하지 말라. 더 궁금한 것은 ‘나는 내 고객을 어제보다 더 만족시키고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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