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로터리] 美食에 대한 단상

양창훈 HDC아이파크몰 대표이사

양창훈 HDC아이파크몰 대표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 그 곤궁했던 시절에 ‘외식’이라는 것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집안의 큰 이벤트였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경양식당과 중국집의 돈가스·짜장면은 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최고의 ‘진미’였다.

세월이 흘러 배가 아닌 감성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 시대지만 그때 먹은 짜장면만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인생 음식이다. 어릴 적 맛본 짜장면이 고급 호텔에서 먹는 값비싼 요리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짜장면에 담긴 시대상과 추억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음식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미식가들의 성서’ 미슐랭가이드도 실은 타이어 회사의 자동차 여행 안내 책자에서 탄생했다. 지난 1900년 프랑스 미슐랭사는 도로 정보와 주유소 위치, 자동차 정비 방법 등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운전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는데 그 가운데 식당에 관한 내용은 운전 중 허기를 때울 정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깐깐한 먹거리 정보와 엄격한 평가 방식에 대한 신뢰가 쌓여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100년 역사의 미슐랭이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을 한자리에 모은 맛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그런데 미슐랭이 택한 장소가 고급 먹거리의 대명사 호텔이 아닌 가장 대중적 공간인 쇼핑몰이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미슐랭가이드에 오를 법한 고급 식당가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역시 호텔이었다. 이에 반해 쇼핑몰 식당가는 운전 중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찾는 식당처럼 물건을 사고 영화를 본 후 잠시 들르는 곳에 불과했다.



미슐랭이 ‘푸드 코트’의 대명사와도 같던 쇼핑몰을 미식의 장소로 택한 것은 수준 높은 음식 문화에 대한 대중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지난해 첫 행사에 8,000여명의 미식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곧 열릴 올해 행사에 참여하는 인기 레스토랑의 인터넷 판매분은 벌써 동이 났다.

대중의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쇼핑몰 역시 이런 세간의 흐름을 재빨리 반영해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적으로 늘리고 있다. 요즘 새로 여는 쇼핑몰은 면적의 20%가 식당과 카페로 채워진다. 대중화 뒤에는 고급화가 이어지는 법. 쇼핑몰과 백화점 입점을 꺼리던 콧대 높은 식당들이 이제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요즘 쇼핑몰의 콘셉트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파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쇼핑몰의 때아닌 맛집 유치 경쟁이 쉽게 이해가 된다. 미식의 즐거움은 호텔에서 한껏 차려입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 데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우리네 주변 가득 성큼 다가 와 있다.

맛은 추억이라고 했다. 엄마의 음식이 맛있는 것은 손끝에서 우러나는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식은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며 더 나은 식생활은 풍요와 여유가 있는 삶의 원천이 된다.

미슐랭가이드는 선정된 식당에 각각 등급을 매기는데 그중 최고 등급인 별 셋(★★★)은 ‘요리를 맛보려고 일부러 여행할 정도의 식당’에 부여된다.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찾는 식당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미슐랭 스리스타가 아닐까 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가장 좋은 식당에 추억을 먹으러 가야겠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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