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파상적인 보호무역 공세에 맞서려는 중국·러시아·일본 간 신밀월 분위기가 형성될지 주목된다. 여기에 북한은 미국과 정상 간 친서 외교로 협상의 물꼬를 튼 한편 미국과 대립선상에 있는 중국·러시아와의 밀착도 강화하고 있어 동북아 외교구도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9일 중국 관찰자망과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북한 9·9절 행사 축전에서 “중국 당과 정부는 중조 친선 협조관계를 고도로 중시하며 중조관계를 훌륭하게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번 북한 9·9절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지만 국가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보내 북중관계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리 위원장이 이끄는 방북 대표단에는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 등 주요 인사가 대거 포함됐다. 지난 7일에는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베이징에서 열린 9·9절 행사장에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훈수 금지’ 경고를 의식해 직접 방북은 피하면서도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국제외교 행보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시 주석은 11~1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4회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층 돈독해진 중러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과시할 예정이다. 시 주석이 동방경제포럼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외교 압박 공세 강화와 맞물려 러시아는 물론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과의 공조 연대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 전략적 외교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 주석의 방러 일정은 러시아가 극동에서 진행하는 군사훈련 ‘보스토크2018’과 겹쳐 있어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 주변의 군사협력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할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관계회복 모색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이번 포럼에서 신밀월 행보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과 아베 신조 총리가 이번 포럼에서 양자 회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야마구치 나쓰오 일본 공명당 대표는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왕양 주석을 만나 “양국 정상의 왕래를 반드시 실현시키고 싶다”고 언급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올해 안에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이 유력한 가운데 이르면 10월 중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동방경제포럼 개막 하루 전인 10일 현지에 도착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북방 4개 섬 공동경제활동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포럼에 초청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8일 방북한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김 위원장을 면담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뒤 김 위원장이 언제든 러시아를 방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 식 압박으로 한반도 주변 강국 사이에서 미국의 견제에 맞서 공동 대응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양새”라며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 깊어지면서 중국 정가에서는 북한과 한반도 이슈를 활용해 트럼프 압박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